인문학 면접, 제시문 받고 발표 형식
서울대, 올 준비시간 15분 늘려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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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식 박문여고 교사
2016학년도 서울대학교 면접·구술고사는 크게 출제문항 기반 면접과 제출서류 기반 면접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술면접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출제문항 기반 면접으로 수시모집 일반전형에서 일정한 준비 시간을 주고, 교과지식을 묻는 계열별 공동 출제와 적성, 인성 등을 평가하는 모집단위 자체 출제로 이뤄집니다.

■서울대 2016년 수시 일반전형 인문계열의 인문학 면접

인문학 소양의 제시문을 주고 문제가 요구한 답을 발표하는 형식입니다. 작년까지는 30분의 준비시간을 주었는데 올해는 45분으로 15분 정도 시간을 늘렸습니다.

<첫 번째 제시문>

왕 : 과인 같은 자도 백성을 보호할 수가 있겠습니까?
현자 : 가능합니다.
왕 : 무슨 연유로 나 같은 사람도 가능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현자 : 제가 이렇게 들었습니다. 왕께서 대청마루에 앉아 계시는데, 소를 끌고 그 아래를 지나가는 자를 보고, "그 소를 지금 어디로 데려가느냐?" 물었는데, 그 사람이 "흔종(?鐘)*에 쓰려고 합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왕께서 "소를 놓아주어라. 소가 두려워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사지(死地)로 끌려가는 것을 내 차마 볼 수가 없다" 하시자, 그 사람이 "그러면 흔종을 폐지할까요?" 물었고, 왕께서는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소 대신에 양(羊)으로 바꾸어라" 하셨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정말 있었습니까?
왕 :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현자 : 그런 마음이면 족히 왕 다운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왕께서 재물이 아까워서 그랬다고 하지만, 저는 왕께서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왕 : 그렇습니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 백성들도 있겠습니다만, 이 나라가 아무리 작다 하나 내 어찌 소 한 마리가 아까워서 그랬겠습니까.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그래서 소 대신에 양으로 바꾸라고 한 것입니다.
현자 : 재물이 아까워서 그랬다고 백성들이 말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작은 양을 가지고 큰 소와 바꾸었기에 그런 것인데, 저들이 어찌 왕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그런데 왕께서 소가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측은히 여기셨다면 어째서 양은 소와 달리 생각하셨습니까?
왕 : 그것은 참으로 무슨 마음에서 였을까요? 내가 재물이 아까워서 소 대신에 양으로 바꾸게 한 것은 아닌데. 그러고 보면 백성들이 나더러 재물을 아까워한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 흔종: 새로 종을 주조하면 소를 잡아 그 피를 종의 틈에 바르는 의식

■문제와 예시 답안

[문제 1] 위의 제시문을 읽고 "그런 마음이면 족히 왕 다운 왕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현자가 말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시오.

[예시답안]

현자가 왕에게 "그런 마음이면 족히 왕이 될 수 있습니다"고 말한 것은 왕이 눈앞에서 끌려가는 소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양으로 바꾸라고 한 것이 재물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왕이 보여준 '애처로워하는 마음'이 '왕 다운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해냈기 때문입니다.

왕은 백성을 지배하고 군림하거나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왕 다운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런 마음'은 '측은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벌벌 떨면서 끌려가는 소의 모습을 보고 이를 차마 어찌하지 못하고 측은하게 여기는 것처럼 백성들의 고통과 근심을 보고 차마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고, 백성들의 마음으로 백성의 고통을 이해한다면 진정으로 '왕 다운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 2] 왕의 마지막 말 뒤에 이어질 만한 현자의 말을 유추해보시오.

[예시답안]

왕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애처로운 광경을 차마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인데 백성들은 왕의 생각을 모르고 한 이야기입니다. 굳이 양으로 하라고 한 것은 양은 지금 눈앞에 보지 않았기 때문이지 소보다 덜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만약 처음에 양의 그런 모습을 보았더라면 왕은 또한 양을 다른 동물로 바꾸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군자가 바로 인(仁)을 행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사람이건 동물이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서는 그것을 외면한다면 인(仁)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백성의 오해는 잠시의 일로 왕이 측은지심을 발휘해 어진 정치를 한다면 자연히 풀리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제시문>

[오뒷세우스는 살아서 저승을 여행하다가 아킬레우스의 혼백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여, 아카이아 인(人)*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자여, 나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물어보러 왔소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바위 많은 이타케에 닿을 수 있겠는지, 그가 혹시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오.

나는 아직도 아카이아 땅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내 자신의 나라를 밟아 보지도 못한 채 끊임없이 고통만 당하고 있소. 그러나 아킬레우스여, 그대로 말하면 어느 누구도 일찍이 그대처럼 행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그대가 아직 살아 있을 적에 우리들 아르고스 인들이 그대를 신처럼 공경했고, 지금은 그대가 여기 죽은 자들 사이에서 강력한 통치자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아킬레우스여, 그대는 죽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시오."
이렇게 내가 말하자 그는 지체 없이 이런 말로 대답했소.

"죽음에 대하여 나를 위로하려 들지 마시오, 영광스런 오뒷세우스여. 나는 죽은 자들 모두를 통치하느니 차라리 시골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가산(家産)도 많지 않은 다른 사람 밑에서 품팔이를 하고 싶소.

자, 그대는 내 의젓한 아들 소식이나 전해 주시오. 그 애는 제일인자(第一人者)가 되기 위하여 전쟁터로 나갔소? 아니면 그러지 않았소? 그리고 나무랄 데 없는 내 아버지 펠레우스에 관해서도 들은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오.

그분께서는 아직도 뮈르미도네스 족(族)** 사이에서 명예를 누리고 계시오? 아니면 노령(老齡)이 그분의 손발을 묶었다고 해서 헬라스와 프티아***에서 사람들이 그분을 업신여기고 있소? 나는 이제 더 이상 햇빛 아래서 그분을 보호하지 못하며, 넓은 트로이아에서 가장 용맹한 적들을 죽이고 아르고스 인들을 지켜주던 때처럼 그렇게 강력하지도 못하오. 그때의 힘을 지니고 내가 잠시나마 아버지의 집에 갈 수 있었으면!"

* 아카이아 인: 고대 그리스 인. 아르고스 인이라고 일컫기도 함
** 뮈르미도네스 족: 아킬레우스의 부족 *** 헬라스와 프티아: 아킬레우스 아버지의 영토

[문제 3] 아래 제시문을 읽고 오뒷세우스와 아킬레우스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하고,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설명하시오.

[예시답안]

오딧세우스가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서운해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디세우스가 보기에 아킬레우스는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어서도 여전히 지하세계의 강력한 통치자이기 때문에 죽음이 슬퍼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죽어서 저승을 통치하는 것보다 비록 비루하게 살더라도 이승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아들과 아버지를 못 잊어 하는 등 가족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들을 잊지 못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처럼 오디세우스가 죽음을 전향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죽은 뒤의 명성이나 권력 등과 같이 타인의 존경이나 대의명분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오딧세우스가 보기에 아킬레우스는 죽어서도 칭송받는 권력을 가진 통치자인데, 자신은 살아 있지만 여태껏 자신이 통치하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킬레우스보다 못하다고 본 것입니다.

반면에 아킬레우스가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현실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과 명예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죽어서 가진 권력보다는 아들의 성공을 지켜보거나 아버지의 명예가 잘 유지되는지 그리고 그를 위해 자신이 직접 무슨 일인가를 더 하기를 바라고, 더불어 자신의 용맹으로 부족들의 안전을 지켜주지도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 4] 제시문을 근거로, 아킬레우스가 이승으로 살아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지 유추해보시오.

[예시답안]

아킬레우스가 드러낸 이승의 삶에 대한 욕망은 이중적이거나 모순적으로 보입니다. 그가 이승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선택하더라도 결국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표면적으로 보면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했던 과거의 영웅적인 삶을 후회하고, 자신의 육신만 보전하며 소박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승의 가족과 부족에 대한 걱정을 하는 과정에서 영웅적 삶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들이 일인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고, 아버지는 과거의 명예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지를 염려하며, 자신 또한 용맹스럽게 부족을 지켰던 것을 회상하는 모습에서 그의 욕망을 읽어 낼 수 있습니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이미 죽음을 경험 한 뒤에 이승으로 돌아간 삶은 보통사람의 삶과 영웅의 삶 사이에서 번민하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송기식 박문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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