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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1912~1957)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노천명(1912~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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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사슴은 학·거북이·해·산·돌·물·소나무·달·불로초와 함께 십장생으로서 민족과 친숙하게 지내온 짐승이다. 십장생은 장수를 의미하는 숭배의 대상으로 고구려 벽화에도 부분적으로 나타나며, 병풍이나 이불보, 베개, 자개옷장 등에 수를 놓을 정도로 길운과 장수의 상징이다.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무척 높은 족속' 등에서 욕망이 절제된 상태의 고고하고 흔들림 없는 정서를 느낄 수 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망울 속에서 숨겨진 '비애의 눈물'을 찾을 수 있다. 슬픔과 고독 속에 잠겨 있는 사슴은 고요한 연못의 물을 통해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 '잃었던 전설'을 읽어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지나온 '지난한 향수'이며 '잃어버린 그리움'인 것 같이, 그러한 날이면 당신도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고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보는 '녹슨 추억'이 있질 않던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