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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관 수도권기상청장
푹푹 찌던 여름을 보내기가 무섭게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이 온 것처럼 찬바람이 불었다. 이번 추위는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한반도로 남하한 것이 원인인데, 지난달 30일 서울에서 첫얼음이 관측되었고, 전국 곳곳의 최저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준비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에 옷장 속 걸어두었던 겨울외투를 꺼내 입기도 하고, 서둘러 두툼한 패딩점퍼를 구매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에 인상을 찌푸릴만도한데 이번 추위가 마냥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방한용품업체와 난방물품업체, 의류업계들이다. 이른 겨울추위로 월동준비를 서두르는 소비자 덕에 전기매트, 내복, 구스다운과 같은 겨울용품들이 벌써 품귀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매출이 급증했다고 한다. 추운 날씨를 기다린 곳은 또 있다. 작년과 올해 초 유례없는 가뭄과 겨울 이상고온으로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아 겨울축제를 개최하지 못했던 인제·화천과 같은 지자체들이다. 겨울축제는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기 때문에 지역 상권이 축제 특수를 누리기 위해서는 산천을 꽁꽁 얼려버릴 낮은 기온과 강수량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작년과 올해 초 겨울축제가 무산되면서 큰 타격을 입은 어민과 지역상인들은 올해 일찍 불어온 찬바람이 얼마나 반가울까.

반대로 이번 추위에 건설현장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보통 겨울에는 기온이 떨어져 땅이 얼면 작업이 어렵고, 또한 눈이 오는 시기가 빨라지거나 길어지면 콘크리트 타설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앞으로 겨울이 오는 시기에 따라 건설업계는 매출에 직격탄을 맞는다.

이처럼 기상기후와 산업은 별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그에 따라 다양한 분야의 업계에서 희비가 엇갈린다. 지난여름, 35℃를 넘나드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에어컨 판매가 급증했고, 더위를 피해 백화점, 마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매출이 올랐지만 반대로 냉방시설이 없는 전통시장에는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겨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재미있는 지수가 개발됐다. 다음소프트에서 개발한 '치킨지수'인데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불쾌지수 등과 SNS에서의 치킨 언급량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불쾌지수가 75미만으로 날씨가 쾌적했을 때 치킨 언급량이 높았는데 날씨가 좋을수록 치킨을 많이 찾았다는 이야기다. 치킨지수가 가장 낮았을 때는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0℃ 안팎까지 떨어져 한파주의보까지 내려진 지난 1월 19일이라 하니 치킨배달마저도 날씨에 따른 상관관계가 있다.

오는 23일, 기상청에서는 겨울철 기후전망을 발표한다.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3개월 동안의 기온이 평년보다 낮을지, 높을지 또 강수량이 평년보다 적을지 많을지 확률을 발표하는데,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기상기후 정보를 활용해 소비패턴 변화를 예측하고 생산과 유통에 체계적인 사전대비를 하고 있다. 부채를 파는 큰아들과 우산 파는 작은아들을 둔 할머니가 비가 오면 부채가 안 팔리니 큰아들 걱정, 해가 뜨면 우산이 안 팔리니 작은아들 걱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할머니가 생각을 바꿔 해가 뜨면 부채가 잘 팔릴 큰아들 생각에 기뻐하고, 비가 오면 우산이 잘 팔릴 작은아들 생각에 기뻐하면서 매일이 행복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지만 지금처럼 기상기후정보가 부채 파는 큰아들과 우산 파는 작은아들에게 제공되었다면 이야기는 또 다른 결말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양진관 수도권기상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