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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하라리. 별명 '시온주의자 제임스 본드'. 작전명 '신의 분노' 책임자. 지난 2014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할때까지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 것은 '테러리스트냐 정보요원이냐'였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만 죽기 전까지 암살을 당할까봐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의 꿈은 '자연사'였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 '뮌헨'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응징 방법이 과연 옳은지, 고뇌하는 하라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972년 9월 5일. 독일 뮌헨 하계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팔레스타인 비밀조직 '검은 9월단'에 전원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분노했다. 정보기관 모사드는 사건 후 '신의 분노'에 돌입한다. 검은 9월단 지도부를 한명씩 한명씩 찾아내 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하라리는 암살팀 '키돈'을 만들었다. 그러나 '검은 9월단' 궤멸을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다. 그는 아랍국가의 또 다른 조직으로부터 정보를 '거래'했다. 비록 적이지만 필요한 정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체면만 차렸다면 79년 검은 9월단 지도부 중 최후의 생존자였던 '붉은 왕자' 하산 알리 살라메를 암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듬해 '검은 9월단'은 붕괴됐다.

2013년 이란이 핵무기 보유를 시도하자 발끈한 이스라엘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을 잡고 정보공유를 뛰어넘어 이란을 직접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다. 영국의 선데이 타임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에 자국 영공을 이용하는 것과 드론사용, 구조헬기 공중급유용 비행기 제공 등의 협력으로 이스라엘 공격을 지원할 것에 대해 동의했다"고 폭로했다. 아무리 적이라 해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적과 손을 잡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제2의 을사늑약'이라며 野 3당이 발끈하고 있다. 심지어 한민구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민들이 반일정서에 휩쓸려도 이를 막아야 할 정치인들이 '일본의 재무장을 인정했다'며 오히려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선동성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 국민의 생존과 국가안위가 걸린 문제에 정략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는 이스라엘의 외교정책을 곱씹어 볼 때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