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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 판화가 통칙 스님 작품은
작고 소박한 목판화이지만
더 없이 큰 울림을 안겨준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익숙한 사람
화려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산다는게 무엇인지 깨닫게 해줘


/보는 놈을 보는 그 것, 그것은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아닙니다. 오직 이 순간 서로의 인연에 의지하여 존재할 뿐 이것이 실제입니다.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 속에 지금 이 순간 알아차리는 자리, 이것이 참 나(我)입니다. 이 순간이 온 우주와 하나 된 자리입니다./ 통칙스님 판화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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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
양평 지평 땅 수곡마을엔 작고 소박한 어울림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울림은 다른 성격을 지닌 둘 이상의 사람이나 물건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룬다는 뜻을 가진 말이지요. 논밭을 앞에 두고 나지막한 언덕을 뒤에 둔 미술관은 흔히 생각하는 미술관 형태의 건축물은 아닙니다. 가건물에 가까운 소박한 모습을 가진 구조물이고 그나마 위층은 선방(禪房)이고 아래층만 전시공간이지요. 이곳은 별도의 입장료 없이 누구나 들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전시공간에는 선(禪)판화가인 통칙(洞則)스님의 판화가 전시되어 있지요. 통칙(洞則)은 밝고 막힘없이 트여있어 진리를 꿰뚫어본다는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의 조부(祖父)는 불교계에선 알아주는 고승이었지요. 그 영향을 받아 불교에 귀의했고 출가 후 곧바로 목판화를 공부해 27년 전 경인 미술관을 시작으로 프랑스 문화원과 운현궁 등에서 거의 매년 작품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의 손에 칼이 쥐어져 나무 판 위를 지나가면 마음을 일깨우는 경구(警句)가 되고 그 구절에 맞는 치열한 삶의 순간과 깨달음의 그림이 탄생되는 것이지요. 목판화는 그 유구한 전통만큼 깊고 넓은 의미를 간직하고 있어 보는 순간 마음이 내려앉고 고요해집니다. 찌든 삶의 일상이나 상처받은 마음이 위안을 얻고 치유되는 이유이지요.

선(禪) 판화가인 그의 판화들은 저마다 다른 의미의 화두를 던집니다. 목판화 그림은 더없이 간결하고 단아하지만 그림마다 던지는 화두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고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다르지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지요. 작고 소박한 목판화이지만 더없이 큰 울림을 안겨줍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익숙한 사람들, 크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중요한 가치와 참 나(我)를 생각하게하지요. 이러한 울림이 있기 때문에 미술에 조예가 없는 평범한 사람도 누구나 작품이 전해주는 의미를 가슴깊이 담을 수가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말이지요.

출가 직후부터 숙명처럼 판화작업에 몰두해온 그는 지금도 월명암 목판화 연구소를 운영하며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선(禪)'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나를 내려놓는 삶'의 가치들이 깃들어 있지요. 신흥사 우송 큰 스님은 "통칙의 작품은 활인검(活人劍)"이라며 "화두 성성한 수좌 같으면서도 천진동자 같은 그의 별같이 성성하고 달같이 적적한 경지를 만나는 장"이라고 했습니다. 미술관이 접근성이 좋고 규모가 크면 좋지만 비록 양평 땅 시골에 있고 규모도 작지만 전시된 작품이 좋다면 미술관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일이지요. 작품의 향기가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지면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들 것입니다.

그는 손엔 쥔 것 없지만 그 빈손으로 목판화를 통해 풍요로움을 찾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지요. 깨달음의 길이 한 세상을 지고 나면 또 다른 세상이 나오듯이 판화도 한세상을 지고 나면 또 한세상이 나온다며 판화로 자신을 볼 기회를 만든다고 합니다. 이런 마음이 내재(內在)되어 있으니 그의 판화가 전해주는 세상은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그 스스로 욕심을 내려놓았으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깊고 간절한 마음은 닿지 못하는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울림 미술관이 삶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들어 삶의 가치와 활력을 되찾는 명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