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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박물관 사운 이종학 선생 송덕비. /동원고 제공

"역사는 정신의 옥토" 사료 수집에 삶 바쳐
수원화성 명칭 회복·방대한 독도자료 기증

울릉도에 있는 독도박물관에 세워져 있는 이종학 선생 송덕비(頌德碑) 비문에는 "우국충정 일념으로 독도를 지킨 분이 동래수군 안용복 장군과 자랑스러운 울릉인 독도의용수비대였다면, 민족정기 지혜로 독도를 지킨 분은 화성의 의인 사운 이종학 공이리라"고 쓰여 있습니다.

2002년 11월 23일,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돌아가신 이종학 선생은 서지학자(書誌學者)입니다. 서지학이란 책의 형태와 재료·용도·내용·변천 등을 과학적이며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이종학 선생은 1927년 화성시 우정면 주곡리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때 보통학교에 다닌 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955년 서울 종로5가에 '권독서당'을 운영하다가, 1957년부터 연세대학교 인근 철길 옆에서 '연세 서림'이라는 고서점을 운영했습니다.

이종학 선생의 삶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 바로찾기로 요약됩니다. 그는 "역사가 대대로 누릴 정신의 옥토라면 지금 제대로 갈아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역사를 김매기'한다는 뜻의 사운(史芸)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었습니다.

"사료는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장되지 않고 지속적인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그는 수집한 사료들을 성격에 따라 기증을 달리했습니다. 일본강점기 사료는 독립기념관에, 이순신 장군 자료는 현충사와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에, 독도 관련 자료는 독도박물관에, 동학 관련 자료는 천도교에 나눠 기증했습니다.

특히 그는 수원의 '화성' 명칭을 회복하는 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시 불리던 '수원성'이란 이름 대신 축성 당시의 이름 '화성(華城)'을 되찾고, '정조대왕 충효 자료전'을 개최하고, 자비로 화성 축성 보고서 '화성성역의궤'를 원형대로 복간해 국내외 연구자와 기관에 기증했습니다.

'아무도 못 말리는 고집쟁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이종학 선생은 30여 년 동안 국내외에서 수집한 독도 관련 자료 351종 512점에다가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 씨의 유품 등을 보태 1998년 8월 8일 독도박물관을 열고 2000년 5월까지 초대 관장을 지냈습니다.

특히, 독도박물관에는 일본자료가 많이 수집 전시돼 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허구성을, 일본 스스로 제작한 일본의 자료를 통해 반박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울릉군에 있는 독도박물관 앞에 있는 이종학 선생이 사재로 세운 비석에는 한자와 한글로 '독도박물관'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한자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 집자 한 것이고, 한글은 세종대왕 때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서 집자 한 것입니다. 특히 '난중일기'에서 집자한 글씨는 글씨체의 아름다움보다는 특별히 의미가 부여된 글자에서 집자 했다고 합니다.

저서로는 '일본의 독도정책 자료집'(2000년)이 있으며, 2003년에는 한국국가기록연구원으로부터 한림기록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유족들은 2004년 이종학 선생이 소장했던 고서적과 사료, 지도, 사진 등 1만9천836점을 수원시에 기증했고, 현재 수원 광교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김찬수 동원고 교사

※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