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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첫눈 한파주의보가 내려졌지만 백두산엔 지난달 4일 첫눈이 내렸다. 2004년에도 10월 1일에 내렸지만 늦은 셈이다. 백두산 첫눈은 보통 9월 하순이다. 그 백두산(2천744m)보다도 1천32m나 더 높은 일본 후지(富士)산 첫눈은 8월 하순이면 내리고 그 후지산 첫눈을 '하쓰칸세쓰(初冠雪)'라고 부른다. '하얀 모자를 쓴 듯한 눈'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눈의 나라다. 노벨문학상 작가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도 그래서 설국이고 '홋카이도(北海道)의 지붕'이라 불리는 다이세쓰(大雪)산에 이름 그대로 큰 눈이 덮이면 일본은 설국다운 면모를 갖춘다. 8월의 첫눈이 이듬해 5월까지 내리니까 6~7월 두 달 빼고 눈 없는 달이 없다. 1996년 5월엔 홋카이도에, 2005년 5월엔 아사히카와(旭川)시에 내렸다. 하지만 일본도 일본 땅 나름이다. 지난 1월 남쪽 카고시마(鹿兒島)현 아마미(奄美)엔 무려 115년 만에 눈이 내렸다.

중국에선 또 산꼭대기에 덮인 첫눈을 '두장설(頭場雪:터우창쉬에)'이라고 하지만 중국의 첫눈도 한반도 남녘보다는 이르다. 2012년 9월엔 북서쪽 신장(新疆)성에, 2004년엔 국경절인 10월 1일 베이징에 내려 기쁨이 더했다. 하지만 중국 역시 중국 나름이다. 지난 1월 남쪽 광저우(廣州)의 눈은 49년 만이었다. 그런데 에베레스트 고봉, 알프스, 적도 밑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최고봉 키보(Kibo) 등의 만년설이야 늘 거기 있으려니 싶어 별로 신비롭지도 새롭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 땅의 첫눈은 세세연년 새롭고 반갑다. 청천(聽川) 김진섭(金晋燮)은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는 것 같다'고 했다. 설악산 대청봉의 새빨간 단풍 위로 앉을 듯 말 듯 날리는 눈발은 또 어떤가. 그게 바로 눈꽃(雪花)이며 '하늘 꽃(天花)'이고 미인의 새하얀 피부도 설부(雪膚), 설기(雪肌)다.

22일 설악산에 내린 2㎝ 눈을 난생 처음 본 싱가포르 관광객 어린이는 '이게 뭐냐'며 신기하게 여겼다고 했다. 굴욕을 씻는 것도 눈(雪辱)이고 치욕을 씻어주는 것도 눈(雪恥)이다. 욕 세제(辱 洗劑)가 눈 아닌가. 좀 춥긴 해도 어서 펑펑 눈이나 쏟아져 온갖 추문에 뒤덮인 이 강산을 하얗게 덮어버렸으면 싶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