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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가 있다. 특히 요즘같이 사회분위기가 한없이 절망적일 때, 보면 볼수록 늘 새롭고 힘까지 나게 하는 영화, '록키'가 그런 영화다. "만약 내가 끝까지 가서…종이 울릴 때까지 서 있을 수만 있다면, 난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또 다른 쓰레기 같은 이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 세계 타이틀전을 앞두고 여자친구에게 두려움을 털어놓는 록키의 말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필라델피아 시청에서 북서쪽으로 뚫린 벤저민 프랭크린 파크웨이 끝에는, 파르테논 신전같은 거대한 건축물 하나가 그림처럼 붙어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이다. 미국 3대 미술관에 들어갈 정도로 풍부한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다. 영화에서 록키가 새벽의 옅은 안개를 뚫고 로드워크를 하던, 시장과 항구를 가로질러 72개 계단을 뛰어 올라 동트는 필라델피아 시내를 쳐다보며 두팔을 올리던 그 장면을 찍은 곳이 바로 미술관 앞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새벽에 찍은 것은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촬영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명감독에 무명배우가 출연하는 저예산 영화에 미술관측은 선뜻 허가를 내주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사람이 없는 새벽에 가서 몰래 도둑촬영을 했다. 그게 역사가 됐다.

고작 100만달러를 투자한 저예산 영화가 작품상·감독상·편집상 등 3개의 오스카를 수상하고, 2억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등 크게 흥행한 후, 실베스터 스탤론은 록키의 동상을 만들어 필라델피아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러나 박물관측은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동상 증정식을 미술관 뒤편에서 치렀다. 하지만 이제 미술관이 자랑하는 폴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보다 록키 동상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러자 미술관 측은 계단을 '록키계단'으로 명명했다.

지난 11월 22일은 록키가 개봉한지 꼭 40년이 된 날이다. 당연히 미국내에선 '록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한 편의 영화가 70년대 좌절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쏘았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 썼던 리뷰 한 구절. "지금 너무너무 힘들고, 하는 일도 잘 안되는 이 시기에, 다시 한번 일어서서 나는 해낼 수 있다는, 가슴 가득히 채워주는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 영화, 그게 바로 영화 '록키'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