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과 분단, 그리고 전쟁의 산물인 '철책'. 휴전선 155마일의 철책은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철책과는 전혀 다른 또다른 철책이 있다. 남북화해 무드속에 남북간 대로가 뚫리고 신도시가 들어서는 등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도 시대변화를 막고 선 한강변 철책들이다. 이미 존재의 가치를 잃고 도시의 흉물로 전락한 이들 철책을 걷어내자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경인일보는 2006년 신년기획 시리즈 '…철책을 걷어내자'를 통해 경기북부와 인천 지역 철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주〉

3일 오전 수원을 출발, 서울 외곽 순환도로을 거쳐 일산 방향 자유로에 올랐다. 뻥 뚫린 왕복 10차선의 자유로를 달리면서 잠시 차창을 내렸다. 코 끝을 베는 듯한 추위 대신 상쾌함이 느껴졌다. 오른쪽으로 '꽃과 호수의 도시' 고양을 알리는 푯말이 보였고 일산 신도시의 아파트 숲이 눈에 들어왔다.

일산 가구단지를 지나자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전시장 킨텍스가 그 멋진 위용을 드러냈다. 한창 공사중인 일산대교는 발전하는 고양의 모습을 대변했다. 이번에는 파주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가 모습을 나타냈다. 지난 94년 자유로 개설과 함께 생긴 출판단지에는 현재 180여개의 업체가 입주, 경기 서북부지역의 발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역동적인 모습과는 반대로 왼편의 자유로를 따라 한강변에 설치된 철조망은 살풍경을 연출했다. 서울과 고양을 연결하는 행주대교 남단에서 시작된 철책은 취재팀의 목적지인 파주 교하읍까지 무려 22㎞에 걸쳐 빈틈없이 내달렸다.

얼기설기 얽힌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한강물 위로는 눈덩이들이 둥둥 떠다녔고 멀리, 지난 여름의 화려한 녹색빛을 잃은 황량한 김포의 모습은 마치 최전방 철책선 앞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왔다.
'이 '철의 장막' 너머로 200만평 규모의 김포 신도시가 들어선다니…'.
김포와 고양·파주 시민들이 한강 철책선 철거를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철책선 철거의 목소리가 높은 곳은 이 지역만이 아니다.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천-경기 해안지역의 갯벌을 시민들에게 돌려줘야한다며 지난 2000년부터 해안 철책선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인천공항의 개항으로 국제도시가 된 인천의 위상에 맞게 새로운 군사전략상 방어시스템을 도입하고 대신 냉전의 산물인 철책을 철거하라는 주장이다.

실제 군사전문가들은 DMZ 철책 외에 수도권지역의 철책들은 간첩침투를 막기위해 주로 50~60년대 설치된 것으로 현재는 군사전략상 중요성이 감소한데다 군 장비가 첨단화되면서 유지관리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철책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중국 등 해외루트를 통해 국내로 침투하는 것이 손쉬운 상황에서 굳이 적발될 가능성이 큰 인천지역 해안이나 한강을 통해 간첩을 침투시킬 이유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김포시지회 김주민 위원은 “남북화해분위기가 조성되고 남북간 경협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지역의 일부 철책들은 이 시대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며 “군당국과 정부는 효용가치가 떨어진 철책의 철거를 심각히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팀=김포/박건준기자, 파주/김요섭기자, 고양/이종태기자, 사회부/왕정식·이진호·김도현기자, 사진부/한영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