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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천성대는 젊은 피리연주가다. 에스닉 팝그룹 '락(RA;AK)'에서 활동한다. 이 그룹은 '민속음악(에스닉)에 뿌리를 둔 대중음악(팝)'을 지향한다.

'태평성대'는 '락'의 대표곡! '어진 임금이 잘 다스리어 태평한 세상을 태평성대(太平聖代)라고 부른다. 락의 콘서트에선 의미가 추가된다. "'태평'소를 부는 천'성대'"라고 해서도 '태평성대'다. 락(RA;AK)의 콘서트에선, '락(Rock)처럼 힘이 넘쳐나는 락(樂)'을 경험한다. 멤버의 기량이 모두 출중하지만, 천성대의 태평소는 특히 신명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악기는 왜 태평소(太平簫)일까? 평화의 피리란 뜻이지 않은가!

오래전 이순신장군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태평소소리를 들었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도 난세(亂世)였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를 잘 안다. 광화문에 가면 이순신 동상이 있고, 이순신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충무공이 지은 한시를, 노산 이은상 선생이 시조로 풀어냈다. 시조의 종장은 이렇다.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茄)는 남의 애를 끊나니'. 호가(胡茄)는 바로 '태평소'다. 한시의 원문은 일성강적갱첨수(一聲羌笛更添愁). 원문에선 강적(羌笛)으로 되어 있다. 강적도 '오랑캐의 피리'란 뜻이다. 그런데 강(羌)이란 한자에는, '아!'하는 '탄식'과 함께, '굳세다'는 의미도 있다. 어쩜 예나 이제나 같을까? 강적, 곧 태평소 소리엔 나라를 걱정하는 깊은 탄식과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굳은 의지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존재한다. 만약 이순신이 살아있어 지금 이 나라를 보면 뭐라 할까? 지금 이 땅에서 퍼지는 또 다른 호가(胡가)의 애끓는 절규와 강적(羌笛)에 담긴 굳건한 의지를 헤아리고 있을까?

'광화문'하면 생각하는 전통노래가 있다. '진국명산'이다. 조선의 지식층이 사랑했던 가곡(歌曲)이다.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가곡의 '편수대엽'이란 곡조에 맞춰서 부르는 '진국명산'이다.

"진국명산(鎭國名山) 만장봉(萬丈峰)이 청천삭출(靑天削出) 금부용(金芙容)이라"

광화문에서 바라본 사면경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인재가 앞으로 계속 나올 조선은 그러하기에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는 희망의 노래다. 이 노래는 감격군은(感激君恩)으로 마무리 짓는다. 왕조 사회에서 성군(聖君)에 대한 감사와, 임금이 계속 성군이길 바라는 심정을 헤아리게 된다.

"이랴도 태평성대(太平聖代), 저랴도 성대(聖代)로다 /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 / 우리도 태평성대(太平聖代)니 놀고 놀려 하노라"

가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태평가'. 일명 '태평성대'다. 동양의 이상사회를 이끌었던 요임금과 순임금이 등장한다. 이상적인 통치자는 이렇게 오래된 노래에만 존재할까? 태평성대와 국태민안을 바라는 민초가 떠오른다. 저 악기를 태평소(太平簫)라고 이름하고, 평화의 시대를 바라면서 이 악기를 힘내서 불렀던 이 땅의 민중의 모습을 상상한다.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서 양희은이 '아침이슬' '상록수'를 불렀다. 그 자리에 있던 천성대도 이 노래를 들었겠지. 광화문으로 향하는 그의 가방엔 '태평소'가 있다. '아침이슬'이 울려 퍼지는 그 곳에서, 성대는 마음으로 태평소를 불었을 거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태평소를 부는 연주가들도 모두 한 마음일 거다. 태평소의 강하고 찬란한 기운이 이 땅 곳곳에 퍼지길 바라노라! 곧 성대(盛代)한 세상이 되어서, 성대(盛大)한 태평소가락을 들으면,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노라!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