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유세 중 언론과 앙숙이었다. 언론을 늑대와 뱀에 비유했고 유독 뉴욕타임스와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1972년 워터게이트로 쫓겨난 닉슨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를 미워했던 것보다도 더했다. 그는 트위터 글에서 '내가 당선되면 NYT는 몇 천부 떨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선거 종료 1주일 만에 4만1천부나 증가했다'는 게 17일 NYT CEO 마크 톰프슨의 발표였다. 그런데 그 트럼프 마음이 하해처럼 넓어진 건가. NYT 간부와 취재단을 그의 트럼프타워 궁전으로 부르지 않고 22일 스스로 NYT 본사를 방문한 거다. 그리고는 'NYT는 미국의 보배, 세계의 보배다. 대단히 존경한다'고 극찬했다. 늑대와 뱀 같은 존재가 세계적인 보물로 둔갑한 거다.
제대로 된 나라의 정치권력은 언론과 늘 껄끄러운 관계다. 4선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언론을 눈의 티끌로 여겼다. 그러나 남몰래 눈물을 닦아냈지 티끌을 나무라진 않았다. 토머스 제퍼슨도 언론을 '무책임한 포화(砲火)'라고 했고 트루먼도 저명한 칼럼니스트 드류 피어슨(Pearson)을 '×새끼'라고 했다. 그러자 백악관 기자들은 그 SOB(×새끼)를 'son of the basement'라고 했다. '백악관 지하층 프레스센터 사나이'라는 거다. 하지만 정작 화를 내야 할 쪽은 여기자들이었다. bitch는 암캐 아닌가. 영국의 '선'지도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는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지렁이'라고 했고 BBC는 그의 바람기를 일러 '3분짜리 사내'라고 했어도 들은 체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카소네(中曾根) 일본 총리가 증세(增稅)에 관해 두 말을 한다며 그의 혀를 가위로 잘라내는 희화(戱畵)를 실어도 그만이었다. 1986년 6월이었다.
문재인이 25일 '제왕적 대통령을 만든 건 주류언론이 감싸고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뒤늦게나마 열어젖힌 건 언론이었다. 사회병리학자들이 일컫는 '반륜(半輪)사회'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굴러가야 할 사회의 바퀴가 반쪽으로 쪼개진 거다. 반규(半規)사회다. 그런 사회를 이끌고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가 언론이다. 개헌보다 언론개혁이 급하다니? 어떤 언론개혁?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