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시지탄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사퇴 의사를 밝혔다. ①국민을 위한 옳은 길을 수없이 고민해왔다. ②국회의 결정과 일정을 따르겠다. ③불찰로 심려 끼쳐 죄송하다. ④한 순간도 사심으로 사익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⑤주변 정리를 못해 죄송하다는 게 사퇴 담화 요지였다. 박대통령의 자의 중퇴는 우리 헌정사상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4·19로 인한 하야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런데 '한 순간도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도대체 정경유착이 뭔지, 어느 선을 넘는 게 직권남용이고 아닌지를 분간하지 못했다는 거 아닌가. 그 동안 국민은 몹시 답답했고 화가 치밀었다. 모르쇠 최순실과 막무가내 박근혜가 누가 더 고집이 센지 겨루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대통령의 격은 땅바닥도 아닌 하수도 수준으로 떨어졌고 반대로 대한민국 국민의 격(格)은 하늘처럼 높아졌다. 그걸 전 세계 언론이 판정했다.
다섯 차례 대규모 촛불집회에 이어 국가 원로들도 내년 4월까지 자진사퇴하라고 권유했다. 그래도 반응이 없나 싶었다. 원로가 누구인가. 고대 로마의 입법자문기관인 원로원 종신(終身) 원로의 권위와 위세는 대단했다. 프랑스 총재정부(總裁政府), 이른바 테르미도르(Thermidor) 반동(反動) 이후 나폴레옹 쿠데타까지 존재(1795~99)한 프랑스 정부 상원의원과 나폴레옹 시대 원로 상원의원 권위도 드높았다. 특히 로마 원로원 중에서도 첫 번째 발언권의 '프린켑스(Princeps)' 권한과 위세는 하늘을 찔렀고 '아레오파고스(Areopagos)'라고 해서 고대 아테네에도 그런 원로원은 존재했다. 동양에서도 천자의 옹립권한을 갖는 국가 원로가 존재했고 그들을 '정책국로(定策國老)'라 불렀다. 그들의 권위 또한 대단했던 건 '정조시(停朝市)'라는 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원로대신이 죽으면 모든 아문(衙門)이 업무를 멈췄고 저자(시장)도 문을 닫았다.
박근혜의 반응이 없길래 원로들을 쭈그렁밤송이 노추(老醜)로만 여기나 싶었다. 친박 중진들도 명예로운 하야를 주청(奏請)했고 드디어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명예 퇴진은 못된다. 그런데 국회의 탄핵 강행 반응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싶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