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심리적 마지노선 붕괴
'경기도내 최저가' 화성지역 일부
작년보다 1만원↓ 4만2천원 소문
등급까지 나빠 추가 손실 불가피
산지시세 80㎏ 13만원선 아래로
하락세 지속 우선지급금 밑돌아
연말까지 반등 안되면 반납사태
농협RPC, 민간보다 수매가 높아
작년 40억 적자 올해도 70억 예상
농가·학계, 쌀값 대책 주장 달라
근본 해결책 '소비 증가' 는 요원
지난 여름 가뭄과 폭염 속에 길러낸 벼가 결국은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속이 타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년째 겪고 있는 일이지만 올해 느끼는 절망감은 유독 크다.
하락세의 산지 쌀가격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3만원(80㎏ 기준)까지 무너져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년 만에 거의 최저치 수준으로 하락한 쌀가격에 수년째 들녘에 울려 퍼졌던 풍년가가 야속할 정도다.
정부에서도 쌀가격 안정을 위해 공공비축미 수매와 수요량 대비 초과생산량에 대한 시장격리 등에 나서고 있지만 올해 벼 수매가격 하락세를 멈출 순 없었다. 도내 각 수매현장에서는 낮은 수매가 결정에 푸념과 탄식만 넘쳐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회원농협들도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농업인들의 고초와 불안감을 감안해 일정 부분 손해까지 감수하며 쌀 수매에 나서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결국 회원농협과 농민들간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전체적으로 쌀소비 감소현상 등 유통마저 쉽지 않아 이를 극복해야 하는 숙제는 농업계 전체의 고민을 넘어 국가 차원의 문제가 되고 있다.
#불안한 농심
지난해 도내에서 가장 낮은 추곡 수매가를 기록했던 화성지역 농민들은 수매가 결정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만2천원에 결정된 수매가가 10월초부터 전국 평균 벼 1가마(40㎏ 기준)에 4만5천원 전후로 거론됐다.
전국 평균가격에 수매가가 결정되더라도 가마당 7천원의 손해를 입는 상황이지만 더 낮은 가격에 수매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소문이 맴돌면서 농심을 극도의 불안감에 빠뜨렸다.
이후 간척지가 많은 A지역의 경우 아직 수매가가 결정되지 않았으나 4만2천원 선에 수매가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만약 이 가격에 결정된다면 지난해에 비해 수매가는 1만원이나 떨어지는 셈이다. 그나마도 1등급을 받았을 때 가능한 이야기로 실로 엄청난 가격하락이다.
화성지역 A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만난 김태수(63)씨는 "쌀 등급이 제현율에 따라 정해지는데 올해 제현율이 높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며 "1등급을 받지 못하고 3등급을 받으면 가마당 수매가가 3천원 정도 낮아지는데 농민들에게는 이마저도 큰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김씨가 말한 제현율은 벼 껍질을 벗겨 1.6㎜ 줄체를 통과 못하는 현미 비율을 의미하는데 1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제현율이 81.5%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는 낟알이 형성되는 7월 상순부터 8월 상순까지 기상여건의 호조로 ㎡당 낟알 수는 증가했지만 등숙기(낟알이 익는 시기·9~10월)의 강수량 증가, 일조량 감소 등 기상여건 악화로 제현율이 떨어졌다는 것이 농업계의 설명이다.
파주RPC에서 만난 최성진(55)씨는 "더이상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도 서슴지 않았다. 1년 동안 벼농사를 지어봤자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씨는 "파주지역의 쌀 수매가는 4만7천원 정도에서 결정됐는데 제가 짓고 있는 6만5천㎡에서 벼농사를 지어 받을 수 있는 돈은 약 5천만원 정도"라며 "여기에서 자재값과 농기계값 등을 제외하면 3천만원 정도의 연간 수익을 남기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조차도 인건비를 뺀 가격"이라며 "농민들이 농사만 짓고는 살 수 없다는 게 바로 이 같은 낮은 수익률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안성에서 벼농사를 짓는 박일관(62)씨 역시 "2등급이나 3등급을 받으면 1등급보다 가마당 수매가가 최대 3천원이 내려가기 때문에 실제 더 낮은 가격을 손에 쥐는 게 현실"이라며 "농사만 지어 먹고 살려면 최소 3만평 이상 농사를 지어야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과연 우리나라 실정에 그런 농사꾼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초유의 우선지급금 반환 사태 우려
정부의 공공비축미와 시장격리곡으로 수매한 농민들의 고민이 크다. 계속되는 쌀값 하락으로 자칫 정부로부터 수매하고 받은 우선지급금을 반환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건 2016년산 산지 쌀값이 10월 5일자(13만4천76원, 80㎏ 기준)를 정점으로 반등 없이 내림세를 지속하면서 발생했다. 지난달 15일에는 산지 쌀값이 80㎏ 기준 12만8천929원까지 떨어졌다.
산지 쌀값으로 추산한 공공비축미와 시장격리곡 정산가격은 이미 우선지급금보다 낮아진 상태다.
10월5일~11월15일자 평균 산지 쌀값(80㎏ 기준 13만758원)을 조곡으로 환산한 가격은 40㎏ 기준 4만4천488원으로, 우선지급금인 4만5천원(40㎏ 1등급 기준)보다 512원 낮다. 공공비축미와 시장격리곡 정산가격은 10~12월 평균 산지 쌀값을 조곡으로 환산해 내년 1월 결정된다.
연말까지 산지 쌀값이 반등하지 않고 하락세가 계속 유지된다면 우선지급금보다 낮은 시장가격으로 인해 우선지급금 중 일부를 반환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우선지급금을 지급하고 수매한 물량은 2016년산 공공비축미 36만t과 시장격리곡 29만9천t 등 65만9천t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6년산 공공비축미곡 매입요령'에는 "우선지급금보다 정산가격이 하락한 경우에는 농협 및 농협중앙회가 농업인으로부터 환수한다"고 기재되어 있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우선지급금을 반환받은 적이 없어 산지 쌀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문제를 놓고 내년에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지 대답하기 어렵다"며 "12월에라도 쌀 가격이 13만원대까지 다시 올라가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부 입장에서는 농가의 손익보전을 위해 변동직불금 지급을 더 늘릴 수도 없다. 변동직불금 산정기준인 10월부터 이듬해 1월 평균 산지 쌀값이 80㎏ 기준 13만411원 이하로 떨어지면 변동직불금 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연간 AMS 한도를 초과하게 된다.
AMS를 초과하는 변동직불금은 농가에 지급할 수 없도록 법에 규정돼 있어 농가 반발과 대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0월5일~11월15일자 평균 산지 쌀값(80㎏ 기준 13만758원)으로 추산한 변동직불금 총액은 1조4천767억원으로, 우리나라 연간 AMS 한도(1조4천900억원)에서 불과 133억원이 모자란다.
이 관계자는 "13만원 이하로 떨어진 산지 쌀 가격(80㎏ 기준)이 현재 추세대로 간다면 내년에는 변동직불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정부 입장에서는 우선지급금 문제뿐만 아니라 쌀 변동직불금 농업보조총액(AMS) 한도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하소연했다.
#수매가 결정을 바라보는 RPC(미곡처리장)의 답답한 심정
도내 RPC들도 수매가를 바라보며 마음이 편치 않다.
수매가가 하락하고 있지만 농협RPC의 수매가가 민간RPC 보다 높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적자 농협RPC가 늘어나고 있다.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 9월30일 기준 도내 21개 농협RPC 중 적자를 기록한 곳은 11곳이다. 이 중 2년 연속,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농협RPC가 각각 4곳이다.
특히 도내 21개 농협RPC는 2014년 79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40억원의 적자로 돌아섰고 올해에도 72억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표 참조
1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한 농협RPC가 2곳에 이르는데 반해 10억 이상의 흑자를 기록한 RPC는 한 곳도 없다. 도내 RPC 관계자들은 이조차도 수매를 앞두고 재고쌀을 민간RPC에 조곡으로 싸게 팔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밝힌다. 농협RPC들이 재고쌀을 민간RPC에 파는 이유는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재고를 정리하기 위해서다.
화성지역 RPC 관계자는 "어느 농협RPC 직원들이나 여름이 시작될 때부터는 서서히 재고쌀 처리를 두고 압박을 받게 마련"이라며 "결국 8월부터 민간RPC에 수매가보다 한참 낮은 가격에 조곡으로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 통상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 농협RPC의 쌀 유통 가격 딜레마
도내 농업계에 따르면 도내 농협RPC의 경기미 중 최상품으로 대우받는 이천과 여주지역의 수매가는 6만2천원에 결정됐다. 반면 지난해 가장 낮은 수매가를 기록한 화성지역은 아직까지 수매가격협의가 진행중으로 4만2천원에서 4만7천원 사이에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민간RPC는 3만5천원에서 4만원 사이에 수매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재료 가격이라고 봐야하는 수매가격부터 농협RPC와 민간RPC간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농협RPC의 시장 경쟁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게 농업계의 설명이다.
농협RPC들의 생산원가 결정과 적용과정의 모순도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농협과 민간 RPC 모두 조곡으로 쌀을 수매한다.
농업계에서는 수매한 조곡을 미곡으로 만들기 위해 도정을 진행할 경우 약 28%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40㎏의 조곡을 도정할 경우 28.8㎏ 정도의 미곡이 나오는 셈이다.
지난해 도내 최저가격에 수매한 화성미를 예로 들 경우 40㎏ 화성미 조곡을 도정할 경우 28.8㎏이 남는다. 5만2천원에 수매한 쌀이 3만7천440원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도정한 쌀을 판매하기 위해 20㎏으로 포장해 가공비와 인건비, 물류비 등을 포함하면 4만2천363원이 원가다.
하지만 이천과 여주 등 일부 지역의 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0㎏ 기준 가격이 4만원 이하여서 원가보전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화성미의 1일 인터넷 최저가는 2만5천원에 형성되어 있다.
안무섭 용인통합RPC 장장은 "그나마 경기미는 시장에서 품질이 좋은 쌀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일부 지역의 경우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며 "민간RPC와의 경쟁도 어렵지만 농협RPC 간에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쌀을 팔기 위해 터무니 없는 가격에 시장에 유통시키는 문제가 더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쌀값 문제
정부가 쌀값 안정화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고정·변동직불금 제도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준기 선임연구위원은 "전체 농업직불금 예산 중 쌀 고정·변동직불금 예산이 73.1%를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밭농업직불금은 낮은 지원단가로 효율성이 떨어져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보상하는 공익형 직불의 비중이 떨어지는 등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쌀 변동직불제를 개편, 쌀 생산조정제를 전제로 수입보험과 친환경직불에 중점을 두는 경영안정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학계의 주장에 농민단체들은 농업 현장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쌀 직불 예산을 줄여 타작목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단순 논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볼수 없다"며 "특히 소득보전을 위한 정책인 쌀 변동직불제 개편에 앞서 기초소득에 대한 수익보전정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농협 관계자도 "수매한 쌀을 해외 원조용으로 사용하자는 농민단체의 주장도 현실성이 떨어지고, 학계에서 주장하는 노동집약적인 밭농업 권장정책도 고령화된 국내 농촌 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이라며 "국민적 관심에 따른 쌀 소비가 늘어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