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자금 썰물·中 '한한령' 발효 등 대외여건 심각
생활물가지수도 2년 4개월만에 인상폭 가장 커

그날의 촛불시위는 6차라 했다. 주말마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을 점령한 지도 벌써 한 달 반이나 흐른 것이다. 갈수록 인파도 많아지고 구호도 격해지고 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했던가. 필자는 솔직히 나라 경제가 걱정된다. 실정(失政)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경제난을 들먹이던 수구세력의 앞잡이여서가 아니라 가난을 귀신보다 두려워하는 민초들의 심정을 혜량하는 탓이다.
세계 11위의 한국경제에 이상 징후들이 확인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지난 3분기 2.7%로 2분기보다 나빠졌다. 국내총생산(GDP)의 45%를 점하는 수출규모가 점차 축소된 영향이 크다. 소비심리도 곤두박질했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5.8로 전달보다 6.1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4월의 94.2 이후 7년 7개월 만에 가장 낮다. 소비자들의 향후 경기에 대한 인식도 2009년 3월 이후 가장 안 좋다. 기업의 체감경기수준도 엇비슷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11월의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91.0으로 19개월 연속 기준치인 100을 밑돌았다. 연말 특수철인 12월의 BSI전망치도 91.7에 불과하다. 김영란법 시행은 경제심리를 더 얼어붙게 했다.
최근 2년간 경제성장을 '나홀로' 견인했던 건설경기도 식어가고 있다. 건설투자의 경우 올 1분기 1.0%, 2분기와 3분기에는 0.5%씩 성장했다. 분기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각각 0.5%, 0.8%, 0.6%에 그친 점을 감안할 때 건설산업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컸던 것이다. 그러나 11월 들어 건설경기는 올 1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대외여건은 더 걱정스럽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부터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에서 썰물처럼 빠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시그널까지 겹쳐 강(强)달러가 된 것이다. 외화자산의 한국탈출을 막으려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하나 세계 8위의 가계부채가 걸림돌이다. 국내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경제보복도 주목된다. 베이징과 톈진의 일부 홈쇼핑방송에서 한국상품 판매방송을 중단하는 등 한한령(限韓令, 한류금지령)이 발효된 것이다. 미국의 보호무역정책까지 감안하면 장차 무역흑자 축소는 불문가지이다.
산유국들의 석유감산 합의도 눈길을 끈다. 국내의 소비자물가는 지난 9월부터 3개월 연속 오름세를 유지했는데 특히 생필품에 근거한 생활물가지수는 작년 11월보다 1.1%나 올라 2년 4개월 만에 인상 폭이 가장 크다. 산업생산은 둔화되는 반면에 물가는 점차 오르는 구조인데 비록 유가상승 폭이 제한적이라도 국내물가를 자극할 것은 분명해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주목된다. 국정농단사태만 없었다면 언론에선 벌써부터 경제위기 운운하며 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한국의 경제컨트롤 타워 부재를 이유로 한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근착의 파이낸셜타임즈(FT)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거론하며 경제위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대로 낮췄다. 성장률 1%대의 극단적 주장까지 눈에 띈다.
국정이 파행되더라도 경제만은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으나 한 치 앞이 예단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때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했다. 혼돈의 밤을 밝힌 촛불이 나라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도 걷어냈으면 싶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