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로서의 생명┃멜린다 쿠퍼 지음. 안성우 옮김. 갈무리 펴냄. 352쪽. 2만원

clip20161208104647
현대 인류는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다. 의료 권력의 작동에 경제 영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이미 우리는 생명을 이윤이자 잉여로 취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은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형성돼 온 정치, 경제, 과학, 문화적 가치들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다.

정치적 힘이자 경제 정책으로 부상한 신자유주의를 논하지 않고서는 생명기술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생명의 존엄과 대다수 사람들의 행복과 안전보다 자기 자신의 부와 명성에 더 유리한 방식으로 전문성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현재의 대한민국 시국을 봐도 명확하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전문성'의 성벽으로 자신을 숨기며, 어떤 체제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면서 배를 불려 왔는지에 대한 진실을 철저히 감추고 있다.

생명과학과 부합한 신자유주의는 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데 아랑곳 않고 부를 축적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을까.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한 절대 가치지만, 이를 주장하기 위해선 오늘날 생명이 어떤 방식으로 이윤의 원천이 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책은 미국의 사례와 정치를 인용하고 있지만 매 대목마다 현재 대한민국의 어떤 지점이 연상될 만큼 보편적이다. 이에 따르면 세월호와 메르스, 지진, 독성 화학물질 등 국가적 재난에 준하는 사안에서 정부가 취하는 아리송한 태도의 본질이 생명경시 풍조에서 기인했다는 추론도 충분히 성립된다.

생명기술이 미래산업으로서 신자유주의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포드식 산업주의 생산 방식에 한계가 찾아왔고,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생명기술에 투기적으로 집착했다는 저자의 추론은 발칙하지만 설득력 있다.

/권준우기자 junwo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