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滿身에 피를 입어 높은 언덕에 내 홀로 무슨 노래를 부른다. 언제나 찬란히 틔어 올 새로운 하늘을 위해 패자의 영광이여 내게 있으라.
나조차 뜻 모를 나의 노래를 허공에 못 박힌 듯 서서 부른다. 오기 전 기다리고 온 뒤에도 기다릴 영원한 나의 보람이여
묘막渺漠한 우주에 고요히 울려가는 설움이 되라.
조지훈(1920~1968)
좌절 속에서 역사는 반복된다.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동력은 안정과 평화 속에 있지 않고, 혼란과 불안 속에서 작동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희망의 불꽃은 위기에 빠진 '패자'의 집단적 분노에서 붉게 타오르며 절규하는 함성으로 펼쳐진다. "찬란히 틔어 올 새로운 하늘을 위해" 실패한 현실을 방관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온당한 저항'으로 타파하려고 하는 의지야 말로 '위난의 시대'를 구명하는 일이다. 다가올 미래를 아는 자가 없듯이 "나조차 뜻 모를 나의 노래를/허공에 못 박힌 듯" 맹목적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불확실한 시대의 진실을 거짓으로 덮어버린 절망 앞에서 '새날의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새날은 "오기 전 기다리고 온 뒤에도 기다릴" 영원한 '패자의 영광'으로부터 있기에. 지금도 위기를 당면하고 있는 '우주에 고요히 울려가는' 우리 민족의 힘이기에.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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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2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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