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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DMZ까지 가는 한강변 철책의 시작점인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의 모습. 냉전의 산물인 철책이 역사적 승전지인 행주산성에서 시작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뒤편으로는 서울 방화대교의 모습도 보인다. /한영호기자·hanyh@kyeongin.com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외동에 위치한 행주산성.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의병과 승병 2천300여명으로 3만여명의 왜군을 물리친 행주대첩의 역사적 전적지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이런 역사의 숨결을 담고 있는 산성의 돌담보다는 오히려 냉전의 산물인 철책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400여년 전의 역사적 승전지가 분단과 전쟁의 대명사인 섬뜩한 철책으로 얼룩져 있는 것이다.

오전까지도 함박눈이 내린 7일 오후. 행주산성에서 내려다본 고양시쪽 한강변 철책은 인근 창릉천에서 시작돼 자유로를 따라 일산 신도시와 파주쪽으로 쭉 뻗어나 있었다.
이 철책은 수십 ㎞를 이어져 비무장지대(DMZ)까지 가게 된다. 민족 분단을 암시하는 비극의 철책선이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문화유적지인 행주산성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이런 행주산성쪽의 모습과는 달리 강 건너 서울 개화·방화동 쪽으로는 철책이 보이지 않았다. 한강시민공원이 설치된 서울시 경계가 끝나고 김포시 경계가 시작되는 지점에 다다르자 한강변 철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고양시와 서울시가 마주하고 있지만 철책은 유독 경기도에서부터 시작됐다.
“서울 사람만 사람입니까. 같은 한강을 놓고 누구는 철책으로 막아 접근도 못하게 하고 누구에게는 시민공원을 조성해 뛰놀 수 있도록 해주고 말입니다.”

행주산성 향토음식촌에서 20년째 영업을 하고 있는 김모(55)씨는 이런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는 “행주산성은 역사·문화관광지인데도 불구 삭막한 철책이 관광객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면서 “적어도 행주산성 지역 만큼은 철책이 철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고양시도 행주산성 부근 행주외동 일대를 도시자연공원으로 조성, 시민들의 발길을 유도하고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지만 이곳을 찾는 외부인들은 매년 줄고 있는 실정이다.

평생을 이지역에서 살아온 토박이 이용규(52)씨는 “어릴적 산성에 오르고 한강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낚시를 했던 아련한 추억들을 갖고 있다”며 “군이 30여년전 빼앗아간 한강을 이제는 다시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행주산성 부근에 철책이 설치된 것은 지난 70년초 행주산성 남쪽지역이 한강수중침투 간첩의 비트장소로 이용된 이후”라며 “요즘은 간첩도 한강으로 침투한 적이 없고 김포대교와 행주대교에서 감시만 잘 한다면 굳이 이지역까지 철책을 설치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