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황태자'였다는 차은택은 국회 청문회에서 '최순실은 박대통령과 동급 또는 그 이상이었다'고 말했고 최순실의 최측근(전 블루K이사) 고영태는 '김종 문광부차관은 최순실의 수행비서 같았다'고 했다. 권력서열 1위(박근혜는 3위)였다는 그 대단하고도 엄청난 아줌마는 도대체 박근혜에게 어떤 존재였나? 박근혜 말대로 단순 서포터나 자문위원 아니면 요즘 말로 멘토였나. 멘토(Mentor)란 그리스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그의 아들 교육을 맡겼던 선도자(善導者)였고 그 말이 일반명사가 된 게 mentor다. 그런데 대통령과 동급 또는 그 이상이었다는 최 줌마는 결코 멘토 정도는 아니었나 싶다. 감히 대통령 연설문을 때려 고치고 장차관 인사까지도 좌지우지하는가 하면 대통령 약 처방까지 대신 받았다는 그녀는 박근혜 고문급도 아닌 왕사(王師) 또는 국사(國師)가 아니었을까.
왕사란 신라 이후 조선왕조 초기까지의 왕들 스승이었고 하나같이 학식과 덕망 높은 승려들로 그 최고 위계(位階)가 '國師'였다. 예컨대 고려 3대 정종(定宗)과 4대 광종(光宗)의 왕사이자 왕의 고문이었던 승려는 혜거국사(惠居國師)였고 8대 현종(顯宗)의 왕사로 사후에 국사로 추증된 사람은 지종(智宗)국사였다. 23대 고종의 국사는 진각대사(眞覺大師), 26대 충선(忠宣)왕의 스승은 진정(眞靜)국사, 31대 공민왕의 국사는 태고대사(太古大師)였고…. 그런데 '國師' 호칭을 '國尊(국존)'으로 바꾼 건 25대 충렬(忠烈)왕 때부터였고 혜영(惠永)국사가 첫 국존이었다. 신라 때도 46대 문성(文聖)왕의 스승은 진감(眞鑑)국사였고 가장 대단한 국사는 신라 말~고려 초의 진경(眞鏡)대사로 제자만도 500명이라고 했다. 왕은 아니었지만 왕 이상의 권세를 누린 고려 중기의 권신 최충헌(崔忠獻)도 지겸(志謙) 대선사(大禪師)를 국사처럼 모셨다.
중국에서도 국왕의 스승(國王的導師)을 '왕저스(王者師)' 또는 '궈스(國師)'라고 했고 일본에도 '오시(王師)'와 '코쿠시(國師)'가 존재했지만 최순실은 국사까지는 몰라도 왕사 급이었을 게다. 오는 19일 그녀의 첫 재판 방청권을 얻으려고 난리라니 최 왕사님의 위세를 알만하지 않은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