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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가계대출이 한달새 8.8조 늘어나는 등 11월 기준 '사상 최대' 를 기록했다. 14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은행에서 시민이 대출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15일(한국시간)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한국의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다시 증폭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애초 전망보다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돼 가계부채 관리가 더 시급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위원들은 이날 내년 금리 인상이 3차례 정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9월의 2차례 전망보다 늘어난 것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현재 꿈틀대고 있는 한국 금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금리가 오르는 가운데 경기 부진으로 소득이 줄어 연체가 발생하고 집값 하락으로 담보가치까지 떨어지면 한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발생할 수 있다.

퍼펙트 스톰은 개별적으로는 크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서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되는 현상으로 금리인상, 경기침체, 부동산가격 하락이 동시에 일어나면 가계 빚이 한국 경제 전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장담했던 당국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가결 이후 잇따라 리스크 관리 회의를 개최한데 이어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소집한 것도 이런 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금리 1%p 오르면 연 8조 추가 부담…취약계층 대출이 문제

한국은행의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1천295조7천531억원이다. 1년 새 130조원 이상 불어났다.

지난 10월과 11월 은행권 가계대출이 각각 7조5천억원과 8조8천억원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전체 규모는 이미 1천300조원을 넘었다.

저금리 상황에서 폭증한 가계부채는 금리 인상기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금리가 오르면 갚아야 할 빚의 총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은행권 고정금리 대출비중(올해 9월 기준)이 41%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700조∼800조원은 금리 변동 영향을 받는 변동금리형으로 추정된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올라가면 가계가 새롭게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연간 7조∼8조원에 달한다는 뜻이다.

고정금리로 분류되는 대출도 대부분 3∼5년이 지나면 변동금리 대출로 전환되는 '혼합형 금리대출'이라 금리 상승에서 계속 자유롭지는 않다.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고 해도 상환 능력이 있는 소득 4∼5분위(상위 40%) 가구가 가계부채의 70%를 부담하고 있고, 가계의 금융자산이 부채보다 2배 많은 수준이기 때문에 가계가 버틸 만한 체력은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약한 고리'인 고령층·영세 자영업자·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제2금융권 대출이다.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2013∼2015년 3년간 연평균 8.2% 증가했으나 올해 증가율은 13%대(상반기 기준)로 뛰었다. 경기 둔화가 장기화하고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생활자금 대출 수요가 많아져서다.

빚이 많아진 상황에서 금리 상승으로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취약계층 다중채무자부터 집단으로 부실해질 가능성이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가계부채의 총량 자체보다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한계가구의 사업자금이나 생계자금용 대출이 늘어난 것이 문제"라며 "소득과 신용도가 낮은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을 낮춰주는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계소득이 5% 하락하고,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는 충격이 발생하면, 가계의 평균 원리금 상환액이 1천140만원(2015년 기준)에서 1천300만원으로 14%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가계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담보인정비율(LTV)이 높아지면서 정상적 경제 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KDI의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에도 먹구름이 끼면서 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가계부채가 내년 소비증가율을 0.63%포인트 떨어뜨릴 것으로 전망했다.

◇ '금리 상승·집값 하락' 최악의 시나리오

전문가들이 보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주택가격 하락과 금리 인상이 겹치는 상황이다.

집값이 하락하면 가계부채의 절반 이상을 자치하는 주택담보대출 부실화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다.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한 영역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최근 부동산시장은 잔뜩 움츠린 분위기다.

분양권 전매와 청약규제를 강화한 '11·3 부동산 대책'이후 금리 인상, 입주 물량 증가,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 집계를 보면 이달 2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2014년 12월 12일 이후 약 2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이달 9일까지 2주 연속 내렸는데, 재건축에 이어 일반아파트값도 1년 만에 상승세를 멈췄다.

정부 공식 통계인 한국감정원 주택가격동향조사에서는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이 이달 8일 기준으로 5주 연속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공급은 내년에도 급속히 불어난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주택가격 하락과 기업부채 부실이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 충격'이 가해지면 금융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등장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주택가격이 20% 떨어지면 은행권이 최대 28조8천억원의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추정을 담은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예산정책처는 "주택가격 20% 하락이라는 경제적 충격이 발생할 경우 다른 조건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가계부채의 부실로 인한 금융권 리스크는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주택가격 하락과 기업부채 부실이 동반돼 발생하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은 보장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 금융당국, 취약계층 지원책 마련에 부심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은 이미 금융시장 위험요인을 점검하고 시장 안정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시장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비상대책반을 가동했으며 가계대출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가계대출의 질적 전환을 가속화하고 금융권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 약한 고리인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도 준비하고 있다.

가계대출의 질적 개선을 위해서는 내년 고정금리 비중 목표치를 42.5%에서 45%로, 분할상환 비중을 50%에서 55%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빨라 질적 구조 개선 속도도 높이겠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계부채 관리가 불안한 상호금융권 중심으로 진행 중인 가계대출 리스크 점검의 대상기관을 확대하고 점검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은행들이 금리 상승기에 가산금리를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가산금리 산정 체계도 정비하고 있다.

한계·취약차주와 관련해서는 주택담보대출 연체 차주에 대해 담보권 실행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고 연체 차주의 부담 경감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은행 등 금융회사가 내년도 가계대출 업무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금감원을 통해 집중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정책금융과 중금리대출 등 서민금융 공급도 확대하기로 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은행의 리스크 관리가 더욱 철저하게 이뤄지도록 지도하는 한편 지나치게 증가 속도가 빠른 비은행권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대대적 현장 점검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