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미 독립선언문을 공동 작성한 벤저민 프랭클린이 1776년 12월 프랑스 대사로 부임했다. 혁명의 기운이 발아(發芽)하던 파리에 독립선언문 작성 당사자가 왔으니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던 84세의 프랑스 최고의 지성 볼테르가 그를 맞이 하기위해 몸소 한림원까지 나갔을 정도였다.
프랭클린은 혁명가 모임이나 문인들의 살롱에 나가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나타나면 주변에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몰려 들었다. 그때마다 70대의 노 정치가는 독립선언문 근간이 되는 절대 왕정반대, 자유, 평등과 주권의 확립을 이루려는 열망에 대해 열변을 토해 프랑스인들의 가슴을 달궜다.
어느날 저녁을 먹기 위해 생제르맹 구역을 방문한 프랭클린은 약관 스무살의 분기탱천한 변호사 조르주 당통을 만났다. 그는 프랭클린에게 말했다. "세상은 온통 불의와 비참함으로 가득차 있다. 징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당신이 작성한 선언문에는, 그같은 선언이 제대로 지켜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법적·군사적 제재를 위한 권한이 전혀 없다." 선언문이 너무 추상적인 말로 채워져 있어 과연 제대로 지켜지겠냐는 일종의 '야유(揶揄)'였다. 이에 대해 프랭클린은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선언문 뒤에는 막강하고 영원한 권력이 버티고 있다. 그것이 바로 '수치심의 권력(the power of shame)'"이라고 응답했다. 인간의 수치심이야 말로 그 어떤 제재보다 옳은 길로 가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수치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공자는 "수치심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知恥近乎勇)"고 말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몰염치한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염치를 모르니 수치심이 있을리 없다. 수치심이 사라지면 사회는 시끄럽고, 어지러워진다. 특히 그것이 정치판일 경우 사태는 심각하다. 조기 대선조짐을 보이자 대대적인 정계개편이 이뤄질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허무맹랑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지 벌써 오금이 저린다. 합종연횡(合從連衡)을 밥 먹듯 하면서도 이를 '정치적 결단'으로 미화할 뿐, 전혀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 대한민국 정치인들. 이들이 '수치심의 권력'으로 언제쯤 국민의 마음을 사이다처럼 뻥 뚫어줄지, 아니 그런 날이 오기나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