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jpg
지난달부터 발생한 AI로 전국적으로 1천500만수의 가금류가 살처분된 가운데 도내 한 양계농장에서 살처분 작업이 이루어지는 모습. /경인일보 DB

중·러시아 철새 따라 바이러스 유입
2003년 국내 첫 발병 전국으로 번져
정부 보상금, 10여년간 6222억 달해
닭고기·달걀등 공급 차질·가격 급등

차량 출입 많은 '산란계' 확산 부추겨
살처분, 농가 비용전가·환경오염 비판
추운날 어는 소독약 실효성 문제 제기
'초기 역량집중' 방역체제 개편 목소리


2016121601001024500049527
1천500만수. 지난달 16일 국내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병한 뒤 살처분 대상이 된 가금류의 숫자다. 이미 266곳의 농가에서 1천140만수의 가금류가 살처분 됐고, 31곳 농가의 400만수는 살처분을 앞두고 있다. 모두 1천937만수를 살처분해 최악의 AI피해로 꼽혔던 지난 2014년에 육박하는 수치다.

지난 AI는 2014년 1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699일에 걸쳐 발병했던 반면, 올해 AI는 한달이 채 안돼 이와 같은 가공할 피해를 입힐 만큼 폭발적인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경기도의 피해는 심각하다. 도의 경우, 안성·양주·양평·여주·이천·평택·포천·화성·용인 9개 시군에서 AI가 발생했다. 전국 발생지의 1/3이 집중해 있는 셈이다.

20만수 이상의 산란계를 기업형으로 사육하는 포천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 지난달 22일 이후, 26곳의 농가에서 모두 228만 수의 가금류를 살처분해 전체 피해 가금류의 20%가 포천에서 살처분됐다.

이번 사태는 산란계 농가를 중심으로 한 바이러스의 '수평 이동'이 두드러진다. 철새를 통한 전염은 불가항력적이지만, 차량 등을 통한 수평 이동은 농가의 철저한 위생 점검·정부의 체계적인 방역 대비만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육계농가와 달리 하루에도 수차례 달걀 운반 차량이 드나들 수밖에 없는 산란계 농가의 환경이 AI 확산을 부추겼다. 또 효력이 떨어지는 소독약과 방역당국의 뒤늦은 대처 등 이번 AI는 '인재'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다시 AI 피해가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한국의 방역 시스템의 문제를 점검하고, 근본적으로 개혁해야만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AI란

AI는 닭·오리·철새 등 조류가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말한다. 고병원성 AI와 저병원성 AI로 구분되고 고병원성 AI는 구제역, 돼지콜레라 등과 함께 전염성이 강하고 파급력이 큰 제1종 가축 전염병으로 분류된다.

증상은 바이러스에 따라 다른데 공통적으로 호흡곤란이나 설사, 산란율 감소 등의 특징을 보인다. 단백질의 특성에 따라 HA, NA형 두가지로 분류되고 현재까지 HA는 16종류, NA는 9종류가 확인됐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지난 2015년 이후 39개 국가에서 2천74건의 AI가 발생했다. 일부 AI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옮기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지난 2003년 이후 H5N1형 AI로 16개 국가, 854명이 감염돼 이 중 450명이 사망했고, H7N9형 바이러스로 4개 국가 793명이 감염, 319명이 숨졌다.

이번에 국내에서 발병한 AI는 고병원성 H5N6로 확인됐다. 지난 2014년 4월 이후 중국에서만 발병이 확인된 바이러스 형태로 16명이 감염돼 그 중 10명(2014년 1명·2015년 4명·올해 5명)이 숨졌다.

수의사협회 회장 인터뷰7

올해 국내에서 H5N6가 확인된 것은 지난 10월 28일이다. 건국대학교 연구진이 충남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의 봉강천에서 원앙의 분변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지난 11월 11일 고병원성 AI를 확인했다.

이로부터 불과 5일 후인 지난달 16일 충북 음성의 한 오리농가에서 오리 200마리가 폐사하며 최초로 농가에서 AI 의심신고가 접수됐다. 이후 도에서는 4일 뒤인 지난달 20일 양주에서 AI가 발생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철새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겨울철새의 번식지인 중국 헤이롱장성·지린성, 몽골 동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 중국 북쪽지역에서 감염된 철새가 국내로 이동하면서 바이러스가 유입된 것으로 판단했다.

또 H5N6 바이러스의 유전자 분석결과 중국 광둥성·홍콩에서 유행한 바이러스 형태와 유사한 것으로 분석됐다. H5N6는 내부 유전자 조합 형태에 따라 또 다시 5개의 유형으로 재분류된다.

도에 영향을 끼친 H5N6형을 분류하면, 안성·양평·이천·평택·포천에서 발생한 AI는 강원 원주의 수리 부엉이에게서 검출된 바이러스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고 포천에서 발생한 AI는 충남 아산의 원앙에서 채취된 바이러스와 같았다.

양주·안성·이천·평택·화성의 AI바이러스는 전북 익산 만경강을 찾은 흰뺨검둥오리에서 발견된 형태였다.

# AI의 역사와 경제적 피해

국내에서 AI가 처음 발병한 것은 지난 2003년이다. 그해 12월 충북 음성의 한 닭 농장에서 AI가 발생해 10개시군, 392곳의 농가에서 가금류 528만5천수를 살처분했다. 이후 발병은 2006년이다. 5개 시군, 460곳의 농가에서 발병한 AI로 280만수를 살처분했고 이어 2008년 발병 당시는 19개 시군, 1천500곳의 농가에서 모두 1천만수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2010년 이후에는 2010~2011년 사이 25개 시군, 286곳의 농장에서 647만수, 2014~2015년 19개 시군, 908곳의 농가에서 1천937만수를 살처분했다.

이렇게 살처분된 가금류만도 4천394만수에 이른다.

이번 AI사태 이전 지난 3월에도 2개 시군, 5곳의 농가에서 AI가 발병해 1만2천수가 살처분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방역당국은 지난 8월에서야 한국을 'AI 청정국'으로 선포할 수 있었지만, 불과 3개월 뒤에 대규모 AI가 재발생한다.

계절적으로 지난 2008년(4월 1일~5월 12일)과 지난 3월 봄철에 AI가 발생한 것을 제외하곤 모두 겨울철인 11~1월 사이로 발생시기가 집중됐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발병한 AI바이러스는 H5N1형, 지난 2014~2016년 3월 발생한 AI는 H5N8형이었다.

정부의 AI 보상금도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정부는 AI 발생시 살처분 보상금과 농가의 생계안정자금, 입식융자 비용 등을 지원한다.

지난 2003~2004년 AI로 살처분 보상금 458억원 등 874억원을 지급한 정부는 2006~2007년 339억원, 2008년 1천817억원, 2010~2011년 807억원, 2014~2015년 2천381억원, 지난 3월 4억원 등 지난 10여년 간 모두 6천222억원을 AI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보상금뿐 아니라 대규모 살처분으로 달걀 가격이 치솟는 등 간접적 경제피해도 나타나고 있다. 살처분된 산란계 수가 전체 산란계의 10% 정도인 817만수에 이르면서 달걀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일선 대형마트에선 달걀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지난주에 이어 달걀 가격을 5%이상 인상했다. 산란계 피해로 달걀 가격이 오르고 있고 종란 공급도 차질을 빚어 내년 초 닭고기 공급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10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 AI, 왜 반복되나


방역당국은 AI 발생 원인을 '감염된 철새로 인한 서해안 지역 오염', '오염된 지역을 왕래한 차량·인편으로 인한 오염' 두 가지로 분류했다.

야행조류에서 발견된 바이러스 항원은 지난 11일 기준 전국 8개 시도, 12개 시군에서 모두 24건 검출됐다. 검출 장소는 세종·이천·원주·철원·증평·부여·아산·천안·익산·강진·해남·창녕으로 대개 서해안과 인접해 위치한 지역이다.

하지만 확산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오염된 지역에서 사람, 차량(기구), 소형 야생조수류(텃새 등)를 통해 농장 내로 바이러스가 유입됐기 때문이다.

농장 주변의 오염된 환경에서 축산 농가주나 농장 방문자가 적절한 소독절차 없이 농장을 방문하거나, 사료·왕겨·약품 등 물품을 반입하거나, 달걀 등을 반출하는 과정에서 오염원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2일 기준으로 발생농가 인근에 저수지, 하천 등이 위치해 근처에서 오염원이 유입될 확률이 높은 농가가 전체 발생농가 138곳 중 102곳(73.9%)에 달했다는 것은 그 근거다.

화성 AI 살처분
도내 한 지자체에서 철새가 머무를 수 있는 하천변을 중심으로 방역 작업을 벌이는 모습. /경인일보 DB

농장 인근의 텃새 등 야생조수류가 농장이나 축사로 침입해 오염원을 유입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12일 기준 발생농장 근처에서 야생조수류가 관찰되는 농장이 113곳(81.9%)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염원이 외부로부터 옮겨왔고, 내부를 왕래하는 차량 등을 통해 바이러스가 또 다른 농가로 이동됐다는 점이다. 지난달 30일 AI 확진판정을 받은 이천시 설성면의 산란계 농장은 같은 달 AI가 발생한 포천의 농가와 이천을 오간 달걀 운반 차량으로 AI가 전파됐다.

15일까지 산란계 농장은 양성농장이 42곳(발생 15건, 예방적 살처분 27건)이고 산란계 농장 밀집 지역에서 한 농장이 발병하면 인근이 모두 감염되는 양상이 띈다.

이천시 부발읍의 AI 확진 농가 역시 같은 마을에 6곳의 산란계 농장이 밀집해 있고, 포천 역시 12곳의 산란계 농가가 모두 모여있는 지역이었다.

통계적으로도 산란계 양성농장은 64%(42건 중 27건)가 3㎞ 내에서 발생했고 특히 포천은 75%(12건 중 9건)가 3㎞내에서 발생했다.

산란계 농장은 육계나 토종닭에 비해 농장내 시설에 출입하는 차량의 빈도가 높다. 50만수를 사육하는 산란계 농가의 경우 5t 달걀 운반 차량이 4차례, 32t사료 차량이 2차례 등 최소 1일 6회 정도 차량이 출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20만수의 산란계를 사육할 경우도 달걀 운반 차량 1차례, 15t사료 차량 1차례 등 최소 2차례 차량이 오고 간다. 반면 육계 농장은 생육 기간(30일)이 비교적 길어 사료 차량이 3일에 1회 정도 오가는 것이 전부다.

결국 사육 규모가 크고 인근에 농가가 밀집해 있는 대규모 산란계 농가가 더 높은 발병 위험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화성 AI 살처분
도내 한 양계농가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이 살처분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인일보 DB

방역당국이 실제 농가의 현황을 자체 조사한 결과, 달걀 운반 차량이 농장 내로 직접 진입하여 계란을 반출하는 경우가 대다수(38건 중 34건·89.4%)였고, 집란실 입구에서 계란을 상차하는 사례(38건 중 36건·94%)도 많았다.

오염 가능성이 있는 외부 차량이 농장 깊숙한 곳까지 접근하면서 전염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또 달걀 운반 기사가 계란 상차 과정에서 방역복을 미착용하고 작업(38건 중 28건·73.6%)하거나 농장 종사자들이 산란계 관리와 계란 상차를 병행(38건 중 28건·73.6%)하고 농장 내에 폐사체와 왕겨를 버리는 계분장이 위치한 경우(38건 중 25건·65.7%)도 다수 확인됐다.

특히 계분장은 계분처리 차량이 빈번하게 출입하고 야생조류의 왕래가 잦아 전염 위험이 크다.

이같은 상황들을 종합하면 종사자들의 위생 의식이 낮고, 농장의 방역 시설이 미비하다는 것이 AI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또 다른 원인으로 방역당국의 소흘한 대처가 지목되고 있다. 농림부는 지난 상반기 가축 전염병 소독약을 점검한 결과 모두 27개 제품이 방역 성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제품에 대한 회수 조치가 이뤄졌지만 소독약을 '물백신'으로 보는 농가의 시선은 여전하다.

AI가 겨울철 발병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소독약이 낮은 기온에 어는 등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일선 시군의 방역전담 인력이 1.2명에 불과해, 확진 이후 24시간 이내에 실시돼야 할 살처분이 평균 2.4일이 걸린다는 점도 문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만 방역전담 인력 300여명이 집중돼 있다보니 머리만 크고 몸이 작은 것이 현재 한국의 방역 시스템이란 지적이다.

방역당국은 '살처분'과 이동통제 등 '차단방역'을 방역 시스템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살처분 방식은 농가에게 비용이 전가되고 환경오염이 우려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농가가 부담하는 살처분 비용의 경우 AI가 양성으로 확인된 농가는 보상 비용의 20%를 삭감하고 최근 2년 사이 AI가 반복 발생하면 50% 삭감, 세번째는 20%만 지급, 네번째는 전액 농가가 내야하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농가에서 의심 사례가 나타나더라도 비용 부담을 이유로 농장주가 신고를 꺼리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통제초소와 거점소독시설을 중심으로 한 차단방역 역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AI 확산세가 지속되면서 백신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16121601001024500049526

하지만 방역당국은 백신 비용이 살처분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소요되고, 바이러스를 미량 주입해 예방 효과를 거두는 백신의 구조상 백신 사용으로 인체감염 위험이 늘어난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이동통제를 중심으로 한 방역기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초기에 방역 역량을 집중하는 방역 체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도수의사회 이성식 회장은 "감염 상황에 따라 방역 정도를 상향하는 현재의 시스템 구조상 AI의 뒤꽁무니만 쫓아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종화·이경진·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