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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영화평론가
내용보다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더 기억에 남는 영화들이 있다. 
예술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영화가 당대의 사회와 충돌하는 경우가 그렇다. 배우나 스텝의 개인 신상에 관련되어 기억에 남기도 한다.

'아이다호'나 '다크나이트' 같은 영화는 작품의 훌륭한 완성도와 무관하게 사랑하는 배우를 잃은 슬픔이 앞서 다가오는 영화다.

그렇지만 보편적 상식이나 윤리관에 어긋나거나 특정 종교에 대한 신성모독적 내용, 혹은 정치권력을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이 담겨 잇는 경우, 개인의 정서적인 반응을 넘어 그 사회의 단층을 드러내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조긍하 감독의 '잘 돼 갑니다'도 그 중 하나다.

김희갑, 박노식, 김지미 등 당대의 인기배우들과 상당한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개봉 직전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고, 그 후 이십여년간 개봉하지 못했다. 필름 압수 이후 감독은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제작비를 회수할 수 없게 된 제작사 역시 파산했다. 

본격 정치 풍자극이라지만 이승만 정권의 몰락을 그린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들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 사실 부통령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의 전횡이나 승마를 하는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의 모습은 지금의 현실과 더 닮아 있다.

교통방송(tbs)이 '다이빙벨'에 이어 '잘 돼 갑니다'를 방영했다. '잘 돼 갑니다'가 박정희 정권의 검열과 영화계 통제의 상징적 영화라면, '다이빙 벨'은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부산시의 상영금지 요청을 부산국제영화제 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파행의 시발점이 된 영화다. 

그러고 보면 두 영화는 박정희 정권과 현재의 정권이 닮은꼴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최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뿐만 아니라 김영한 비망록을 통해 정권이 문화예술계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를 시도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문화예술은 사회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앞서 감지하고 말해주는 징후 같은 것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이 입을 다문 사회는 자각 증상 없는 병자와도 같다. '잘 돼 갑니다'라는 말은 병들어 잇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혹은 병든 사실을 은폐하는 감언이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대연 영화평론가 (dup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