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핏줄', 영원히 풀 수 없는 족쇄
필리핀 여성을 엄마로 둔 경호(6·가명)는 외톨이다. 또래 아이들보다 어눌한 말 때문에 아이들이 '왕따'를 시키기 때문이다. 외모의 차이도 차이지만 한국말이 뒤떨어지다 보니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금세 티가 나 뒷전으로 밀려난다. 할 수 없이 경호가 가는 곳은 집에 있는 엄마품이다. 하지만 하루종일 농사일과 집안일로 바쁜 엄마 곁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뒤를 쫓아다니며 서툰 말 몇마디를 나누는게 고작이다. 그런 경호를 바라보는 엄마 아델라(32·가명)씨의 마음은 더 미어진다. 이제 곧 학교에도 보내야 하는데, 공부는 둘째치고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하루하루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다.
지금 농촌에는 '외국인 근로자'와 '외국인 아내' 보다도 더 힘겨운 존재가 늘어가고 있다.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코시안' 아이들이다. 이미 전국적으로 6천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농촌지역의 결혼이민자 2세 아이들은 한살 한살 커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씌워진 무거운 굴레를 실감해간다.
“본래 '코시안'이라는 말은 '코리안(Korean)'과 '아시안(Asian)'이 합성된 것으로 외국인 이민자들과 그 가정을 폭넓게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점점 변질돼 이제는 부모중 한쪽을 외국인으로 둔 2세들을 지칭하는 말로 전락했습니다. 결국 이런 아이들을 한국인 부모를 가진 아이들과 격리시키는 말처럼 된 것인데 앞으로는 이런 의미로 쓰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안산 코시안의집 김영임 원장의 설명처럼 한국인 어른들은 외국인 이민자 2세들에게 '코시안'이라는 명칭으로 금을 그어놓았다. 법적으로도 이들은 완전한 한국인이지만 현실에서는 '코시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버린 것이다.
이 아이들이 이런 꼬리표를 떼어버리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외모와 언어다. 어디를 가든 이 두가지는 곧바로 눈에 띄기 때문이다.
외모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언어문제는 이들에게 너무도 무거운 짐이다. 특히 외국인 어머니를 둔 농촌의 아이들은 대부분 한국어 문제로 힘겨워하고 있다. 가정교육을 담당하는 어머니로부터 한국어를 배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학교에 갈 때가 되니 더 힘들어요. 다른 아이들은 집에서 한국사람 엄마와 학습지도하고 학원도 다닌다는데 저는 공부를 가르쳐줄 수가 없어요. 집도 가난해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보다 공부를 못할까봐 걱정이 많아요.”
시흥의 변두리 지역으로 시집온 한 베트남 여성(30)은 요즘 아이의 한국어 문제와 학교문제 때문에 걱정이 돼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안산지역에서 만난 스리랑카인 엄마를 둔 상호(가명·초등학교 6학년)도 초등학교 6학년 답지 않게 말이 서툴러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농촌으로 결혼해온 외국인 여성으로부터 태어난 2세 아이들은 사회에 적응하는 가장 기본요소인 한국어를 배우는 것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뒤떨어지고 있다. 학교에 진학할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서 대부분 다른 아이들보다 학력이 현저하게 뒤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때문에 경기도교육청이 이주외국인 2세들이 많은 안산과 시흥의 학교에 다음달부터 이들을 위한 특별학급 2개반을 설치해 운영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별학급에서는 부모가 모두 외국인이거나 한쪽이 외국인인 2세들의 학력이 크게 뒤떨어지는 점을 감안해 학년구분없이 수업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농촌지역으로 결혼해온 외국인 여성이 1만명에 달하고 이들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이 6천명에 달하고 있는데다가, 연간 2천명 가까운 외국인 여성들이 농촌으로 결혼해오는 현실을 감안할때 농촌지역을 대상으로 이같은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도시지역의 경우 학교 외에도 각종 사회단체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은 반면, 농촌은 이같은 교육 기회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최근에는 농촌으로 시집온 외국인 여성들이 아이들 교육을 위해 도시로 옮기려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김영임 원장은 “농촌으로 시집온 외국인 여성들이 경제적인 어려움과 문화적인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것과, 그 2세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법적으로도 완전한 한국인인 이들 2세 아이들이 농촌의 경제적 빈곤과 학력의 빈곤에 갇혀 또다시 악순환을 거듭하지 않도록 전 사회적인 관심과 대책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취재반
[농촌의 외국인·7] '코시안' 꼬리표가 외톨이 만들어
입력 2006-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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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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