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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스라엘의 여름은 뜨거웠다. 날씨 탓도 있지만, 집세와 생필품 가격 폭등으로 고통받던 서민들이 전국 주요 도시의 광장과 공원 등지에 텐트를 치고 대규모 시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른바 '텐트 시위'다. 1주일만에 시위규모는 30만명으로 늘어났다. 이스라엘의 인구는 고작 800만명. 우리로 따지면 200만명 정도가 시위에 참가한 셈이다.

이들은 심각한 소득불평등과 경제위기로 인한 물가부담, 소득정체에 이어 재벌들의 독과점 횡포와 정부의 취약한 공적 지출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특히 재벌이 이스라엘 경제를 멋대로 주무른 탓에 물가가 폭등했다며 독과점 타파와 생활비 안정을 위한 재벌개혁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이스라엘 재벌은 우리처럼 문어발식 경영으로 유명하다. 재벌 서열 1위인 IDB의 경우 이동통신사·건설·슈퍼마켓·시멘트·종이·화학·소매업·보험·의료 등 백화점식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이스라엘 10대 재벌의 매출액은 이스라엘 GDP의 25%를 차지한다. 또 상위 10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41%로 OECD 국가중 1위이며 2위는 40%인 우리나라다. 이스라엘 재벌은 1990년대 헐값에 국영기업들을 불하받는 등 민영화 정책의 수혜자들이다.

2013년 4월 22일 이스라엘 의회는 만장일치로 재벌개혁법안인 '경제력집중법' 을 통과시켰다. 지주회사를 정점으로 4단계까지 이어져 있던 재벌의 피라미드식 지배구조를 1, 2단계까지만 허용키로 한 것이다. 재벌들은 계열사들의 정리에 들어갔다. 효과가 나타났다. 3개였던 이동 통신사가 6개로 늘어나면서 1년 새 통신비가 90%나 하락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재벌개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최순실의 말 한마디에 재벌들이 앞다퉈 수십억 원의 돈을 갖다 바친 것이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재벌개혁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재벌이 존재하는 한 정경유착의 '은밀한 거래'가 끊이질 않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팀이 정식 수사에 돌입한 첫 날, 첫 칼날이 1위 기업 삼성을 향한 것은 그래서 큰 의미를 갖는다. 최순실 게이트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최순실이 등장할 것이다. '유대인의 지혜'를 빌려서라도 이번 기회에게 반드시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