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다 알려진 사실이다. 책읽지 않는 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사실에 세계인들은 지금도 경이로워하고 있다. 한국인의 평균 독서시간은 6분, 성인 세명 중 한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물론 OECD 국가 중 단연 꼴찌다.
안중근은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사형집행 전 "책을 다 못읽었으니 5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는 안 의사의 말은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지금도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이라는 안중근의 복사본 유필을 족자로 만들어 걸어두는 집도 꽤 된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내용임을 알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도 책 읽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연말이 되자 올해도 예외없이 모든 언론매체마다 '올해의 책'을 선정하느라 분주하다. 전세계 독서 꼴찌 국가의 언론들이 매년 앞다퉈 이런 특집기사를 정성스럽게 꾸미는 것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끊기지 않고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것은 그 책안에 한 해의 세태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끼리 겹치는 경우도 있지만 매체의 성격에 따라 선정되는 책들은 무지개 빛깔처럼 다양하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난 지 두달이 넘었다. 여전히 국민들은 큰 충격과 허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건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도 어렵고, 더군다나 그 후유증이 언제 치유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감이 너무도 싫었던 丙申年에 우리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어딘가에 기대어 구원받고 싶어 하는 좌절하고 분노한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친다. 촛불을 드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책도 우리가 기대어 구원받을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한해 동안 책을 읽으며 느꼈던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몸과 마음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허세를 부리지 않았던가. 나는 왜 그를 미워하고 그는 왜 나를 싫어 했는가. 옳지 못한 권력과 더럽혀진 양심 앞에서 무기력하게 그대로 서 있기만 하지 않았는가. 인정과 사랑은 있어도 그것을 나눌만한 이웃들이 없다고 탄식하지는 않았는가. 성찰하는 丙申年의 시간도 이제 겨우 이틀 남았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