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太陽號'를 연상케 하는 태영호, 작년 7월 한국에 온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말했다. '북한 주민이 눈을 뜨면 북한은 물먹은 담벼락처럼 무너질 것'이라고. 그럼 북한 주민들은 아직도 캄캄하게 눈을 감고 있다는 건가, 아니면 실눈만 겨우 뜬 채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만 우러르고 있다는 소린가. 태영호씨가 한국에 오면서 아들에게 '이제 잘 살아 보자'고 했더니 '난 이제 남조선 영화와 책, 인터넷을 맘대로 보고 뒤져도 되는 거죠?'라고 말했단다. 그 얼마나 눈물겨운 부자 대화인가. 그 태영호씨는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을 맡게 됐다지만 과연 앞날은 순탄할까. 이 참에 문득 황장엽씨가 떠오른다. 전 김일성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의장, 조선노동당 비서, 주체사상연구소장 등을 지낸 북한 최고 거물이자 지성인이었던 그는 YS 정권 말년인 1997년 4월 74세로 한국 땅을 밟았고 2010년 10월 타계(87)까지 13년을 남한에서 살았다.
김일성 주체사상 이론을 정립했던 황장엽. 그의 한국 망명은 그 이듬해 DJ 정권이 들어섰고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졌다. 그 좌파 세상 10년을 실감한 그의 만년(晩年)이 어땠던가. '이러려고 내가 남조선에 왔나!' 회한(悔恨)이 뼛속에 사무쳤을지도 모른다. DJ정권을 겨냥,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는 책을 내자 국정원이 그의 활동을 제재했다. '시대착오적인 늙은이'라며 정치인 언론인 접촉과 외부강연 등을 금지시켰고 미 의회로부터 방미 초청도 수차례 받았으나 DJ정부가 막았다. 저술활동까지 막혔고 심지어 북으로 돌아가 투쟁하라는 비난까지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 황장엽을 태영호는 알고 있었을까.
그는 '10조 달러를 갖다 줘도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 11조 달러를 주면 될 거 아니냐'는 골수 좌파들의 제의에 '그랬다가는 떼돈만 떼일 뿐'이라며 답답하다는 듯 말할지도 모른다. 집권 5년간 340명이나 처형했다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핵과 미사일이 완성 단계'라고 했다. 남한의 금년 상황도 두렵다. 왜? 북한 엘리트였던 태영호 그가 제2의 황장엽 꼴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지나 않을까 해서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