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201000836600040461

노무현 대통령은 울보였다. 2002년 대선에서 존 레논의 '이매진'을 배경음악으로 만든 선거광고로 톡톡히 효과를 본 '노무현의 눈물'은 그 시작이었고, 대통령 취임 후에도 그는 여러 공식석상에서 눈물을 보였다. '울보 노무현'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눈물이 많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에게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10년 천안함 영결식장에서 추모 연설도중 눈물을 흘렸다. 재임시절은 아니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휠체어에 앉아 통곡해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금 역효과를 보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세월호 참사 때 언론들을 향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권력자의 눈물이 늘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 남는 독재자 스탈린도 히틀러도 모두 눈물 많은 권력자였다. 특히 히틀러는 여자 뺨칠만큼 눈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나치당의 핵심이었던 오토 슈트라세르가 탈당을 하려 하자 밤새도록 그를 설득하면서 세 번이나 울었다고 한다.

퇴임 열흘을 남긴 버락 오바마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고별 연설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부인 미셸에 관한 대목에 이르자 오바마 대통령은 눈물을 글썽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백악관이 아닌 시카고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시카고에 돌아가고 싶은 그의 바람 때문이었다. 시카고는 그의 삶 그 자체였다.

눈물과 함께 한 이날의 오바마 연설은 늘 그랬듯 큰 감동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노력하면 비범한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수없이 많이 깨달았다"로 시작한 연설은 대선 당시 자신의 구호 '예스, 위 캔(Yes, We Can)'을 외치고 "예스, 위 디드(Yes, We Did·우리는 해냈다)"로 끝을 맺었다.

누군가 오면 누군가는 떠나가고, 그러면서 이제 우리도 누군가의 고별사를 들어야 할 순간이 반드시 오게 된다. 눈물로 읽는 그 고별사가 늘 감동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의 고별사와 눈물이 심금을 울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마도 정계를 떠나겠다며 눈물 섞인 고별사를 하고도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정치인들의 눈물을 우리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