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가 밝은지 2주가 지나가는 시점에서 눈길을 끈 작품은 쇼스타코비치(D. Shostakovich·1906~1975)의 '교향곡 12번, 1917년'이었다.
작곡가가 악보 첫 페이지에 쓴 '레닌을 기억하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작품은 꼭 100년 전 러시아에서 왕정 체제를 무너뜨리고 일어난 10월 혁명(볼셰비키 혁명)을 소재로 1961년 작곡돼 그 해 초연됐다.
4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각 악장에 제목이 붙어있다. 혁명의 페트로그라드, 라즈리프(Razliv·레닌그라드 인근의 호수), 아우로라(Aurora·혁명에 참여했던 군함), 인류의 새벽으로 이어진다. 교향곡 보다는 교향시에 가까운 이 작품은 음악을 듣지 않아도 각 악장의 제목을 통해 작품의 전개가 연상된다.
음악을 들으면서 격동의 시대를 산 작곡가를 생각했으며, 현 우리 시국을 떠올렸다.
작곡가는 러시아 혁명을 어렸을 때 겪었고, 제2차 세계 대전도 체험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경험 또한 자신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교향곡 4번'에 대한 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지의 공격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다른 노선으로 밀어 넣었다. 그동안 전위적인 실험성을 추구해오던 쇼스타코비치는 1937년 작곡된 '교향곡 5번'에서부터 전통과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버무려낸 중도적 노선으로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체제와 권력이 작곡가의 상상력까지 통제할 순 없었다. 때문에 삶의 긍정에 기반해 현실의 비극성을 적절히 드러낸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과 같은 수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현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또한, 개인의 사상이나 상상력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철저한 오산 속에서 만들어졌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몰이해도 더해졌다.
1980년 신군부 주도하에 신문·방송·통신을 통폐합한 언론통폐합과 같은 행태가 재현되는 모습을 보면서 구 소련 체제하의 쇼스타코비치와 우리나라 현 정권 체제하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