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특정 정치·이념 편향되지 않아
표현의 자유 보장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 향해 문 열어두는 것
인간답기 원하면 당연히 그래야
1988년에 사회주의 문인에 대한 대대적인 해금조치가 있었다. 당시 문화예술계는 잃어버렸던 반쪽을 되찾은 기쁨과 흥분으로 이를 환영하였고 우리는 비로소 월북한 문인들과 서구 사회주의권의 주요작가를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이다. 브레히트는 현대연극에서 가장 강렬한 영향을 미친 작가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높은 작가중 하나이다. 그는 극작가로서 연극 분야의 업적이 두드러지지만 연극 외에도 시와 산문, 독특한 형식의 우화와 소설까지 특정 장르에 한정되지 않는 뛰어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브레히트에게 예술은 인간과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도전이다.
따라서 그를 사회주의 국가의 사회주의자로 구분해도 그는 단순한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브레히트는 소련은 물론, 사회주의 동독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동독 당국은 지속적으로 그를 감시하였다. 하긴 그를 경계한 것은 그 모든 권력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망명하였으니 히틀러 독일의 좌익이었으며 코민테른의 일원으로 간주되었으니 유럽 자본주의의 좌익이었다. 소련의 현실에 경악하여 '어떤 범죄적인 집단들이 일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하였으니 소련의 좌익이었다. 미국으로 망명해서는 반미행위를 의심받았으니 미국도 그의 편은 아니었다. 독일 밖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곳을 찾느라 어렵게 오스트리아 국적을 취득했지만 오스트리아 민중당의 방해로 결국 자리를 잡는 데는 실패하였고 전후 중립국을 대표하는 스위스에서조차 거처를 찾지 못하였다. 겨우 베를린에서 작업을 시작했지만 사회주의 동독은 그를 감시하는 요원을 상시 배치해 둘 정도였다. 그러나 브레히트는 굴하지 않았다. 1953년 동베를린에서 일어난 인민봉기를 진압하고 인민의 목소리를 억압한 당국의 조치를 비판하여 그럴 바엔 '정부는 인민을 해산하여 버리고 새로운 인민을 선출하라'고 일갈한 시 <해결방법>의 날카로움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잊음을 잊은 위정자들에게는 지금도 신랄한 현재형 공격이다.
브레히트는 현실을 중시했고 이념이나 제도를 위해 인간을 기만하는 것을 비판했다. 좌우를 막론하고 이익을 위해 현실을 부정하거나 진실을 왜곡하는 자들을 그는 '투이'라고 칭했다. '투이(Tui)'란 지적(知的)이라는 의미의 독일어 'intellektuell'을 'tellekt-uell-in'으로 도치시켜 만든 브레히트의 신조어이다. 지식을 권력에 맞게 재조직하면서 반인간적으로 사용하는 인간들이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지식의 반대말은 무식이 아니라 반인간이라는 통찰이다.
우리 사회에 반인간적 '투이'가 전횡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법마(法魔)라고 칭한다고 한다. 법을 악마같이 활용하여 책임을 회피하고 사악한 행동을 일삼는다는 뜻이다. 내로라하는 학벌과 경력에 그 대단하다는 법지식으로 높은 자리에 군림하며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고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며 예술의 진화와 인간의 성장을 가로막는 자들이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블랙리스트를 주도하며 우리 사회의 문화예술을 근본에서 살해해 온 것이다.
예술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기반으로 현재에 안주하지 않으며 언제나 가지 않은 길, 혹은 가고 싶은 길을 꿈꾸고 상상한다. 때로 불편하고 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브레히트가 그랬듯이 예술가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근본적으로는 어느 특정한 정치나 이념에 편향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인간을 위한 더 나은 세상을 향하는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인간답기를 원한다면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