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민주화 운동 이뤄낸 베이비붐 세대
사회 각 분야 중추적 역할 '새 리더십' 기대
충남 엑소 안희정, 87체제 '시대교체' 상승세
사이다 발언 이재명 '뉴딜정책' 반전 밑그림
심상정·최성도 국가개혁·혁신 공약 앞세워
안철수, 제3지대와 거리 두며 자강론 펼쳐
연정 앞세운 남경필 "일자리 대통령 될 것"
TK 새아이콘 유승민·김부겸, 확장성 기대
장성민, 저성장 탈출 '경제 정책' 히든카드
여론조사 1위 '굳건한 文' 넘기 녹록지않아
올해 대선을 앞두고 50대 주자들의 활약이 예사롭지 않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맞으면서 박근혜 정부의 추락으로 정치 교체, 세대교체, 세력 교체,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적 열망이 높다 보니, 50대 주자들의 행보에 유독 눈길이 쏠린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에 '베이비붐' 세대로서 유년기에 산업화를 겪었고, 청춘을 바쳐 민주화를 이뤄낸 지금의 50대는 정치권에서도 의미 있는 세대로 꼽힌다. 그래서 한국 정치의 '리셋' 바람이 의미 있는 담론으로 형성되고 있다.
지난 1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갑작스런 중도 하차로 인해 현재로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며 대선 레이스를 이끌고 있지만, 50대 주자들의 '변화' 바람이 돌풍으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다. 국가적 혼란이 크고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을수록 인적 쇄신의 강도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과도기에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던 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도 50대 돌풍으로 참여정부를 탄생시켰다. 정치와 역사는 살아 숨 쉬는 '생물'이라고 하듯, 앞으로 있을 19대 대통령 선거도 더 큰 변화를 몰고 올 징후가 재현되고 있다.
한 민간인의 국정 농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어찌 나라가 이 지경까지 왔나?'라는 공분과 자조에 빠져 난마처럼 얽혀 있는 이 시대를 이끌어 나갈 '영웅'(?)을 기다리는지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의 끝자락인 50대는 한국 정치의 변화를 주도할 만한 대표적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곳곳에서도 50대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뭉치면 더 큰 위력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50대 주자들의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촛불 정국에서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가 치솟은 이재명(53) 성남시장의 예를 보면 얼마든지 반전과 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50대 주자로는 대략 10여 명 정도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거나 거론 중이다.
'제 3지대'와 거리를 두면서 자강론을 펴는 안철수(55) 전 국민의당 대표, 대구·경북(TK)의 리더로 주목받는 바른정당 유승민(59)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부겸(59) 의원, 광역단체장 경험으로 무장한 남경필(52) 경기지사와 안희정(52) 충남지사 등도 모두 동시대에 함께 성장한 인물이다.
여성 정치인으로 유일하게 대선에 나선 심상정(58) 정의당 대표와 장성민(53) 전 의원, 최성(53) 고양시장도 모두 50대이고, 새누리당에서 눈길을 보내고 있는 황교안(60)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도 50대를 갓 넘겼다.
설을 기점으로 이들의 행보는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세대교체라는 담론으로 새로운 지도자의 역할론을 내세우며 저마다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각론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저마다 새로운 지도력을 강조하고 있고, 대중의 틈바구니를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가장 먼저 대선 출마 선언의 테이프를 끊은 건 최 시장이었다.
그는 지난달 5일 '혁신'과 '대통합'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마를 선언했다. 최 시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정치개혁과 자치분권 국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가 ▲청렴한 국가 등의 내용을 담은 '대한민국 5대 개조론'을 앞세웠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을 위해 인공지능, 신소재 개발, 클라우드 서비스, 로봇 산업 등 10대 역점산업을 육성하겠다며 "더 이상 색깔론과 이념 논쟁이 아닌 정책 중심의 대선이 돼야 한다"고 정책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어 지난달 19일 대선 출마를 발표한 심 대표는 '차별 없는' 사회 구조를 위한 정치·경제 개혁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1%의 소수 대기업과 부자의 번영을 위해 99%가 볼모로 잡힌 경제는 정의롭지 못하다"며 불평등해소를 위한 '3대 대압착 플랜'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심 대표는 "노동시장 내 '최고-최저임금연동제(일명 살찐 고양이 법)'를 적용하고,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를 위한 '초과이익공유제'를 실현하고, 노동시장 밖에서는 '아동·청년·노인 기본소득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충남 엑소(EXO)'라는 별명처럼 50대 기수 중 젊은이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있는 안 지사는 지난달 22일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토크 콘서트 형식의 대선 출마 선언을 통해 젊은 세대와의 소통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 자리에서 그가 강조한 점은 '시대교체'였다. 안 지사는 "입으로만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고 몸·마음·행동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것이 시대교체의 시작"이라며 "시대교체의 시작은 다가올 대통령 선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87년 6월항쟁 이래 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30년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공약 제시보다는 시대교체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어린 시절 일했던 성남의 한 시계공장에서 지난달 23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 시장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생의 꿈이었다"며 '이재명식 뉴딜정책'을 내걸었다.
그는 "공정경제질서 회복, 임금 인상 및 일자리 확대, 증세와 복지 확대, 가계소득 증대로 경제 선순환과 성장을 이뤄야 한다"며 "29세 이하와 65세 이상 국민, 농어민과 장애인 2천800만명에게 기본소득을 100만원씩 지급하고 국토보유세를 만들어 전 국민에게 30만원씩 토지 배당을 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정치개혁과 관련해서도 "국민소환, 국민투표제 등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확대하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드러냈다.
50대 기수 중 보수 진영의 쌍두마차인 남 지사와 유 의원은 각각 '일자리'와 '정의'를 키워드로 제시하며 역시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남 지사는 지난달 25일 출마기자회견에서 "새 정치와 새 시대를 위해 '국민 일자리 특권시대'를 열겠다"며 "혁신으로 일자리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낡은 지도자에게는 세상을 바꿀 미래비전이 없다. 미래세대로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며 "옛 정치를 버리고 권력을 나누는 새 정치, 즉 '협치'와 '연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리빌딩'을 기치로 내걸고 '젊은 리더십'을 표방하고 있는 남 지사는 "철인 같은 지도자 한 사람이 세상을 이끌던 시대는 끝났다.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사회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유 의원은 지난달 2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용감한 개혁'이라는 출마선언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정의와 개혁을 강조했다.
유 의원은 "정의로운 민주공화국을 이뤄내는 것이 시대가 부여한 길"이라며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 등 권력기관 개혁은 물론 정경유착을 뿌리 뽑아 법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그러면서 "재벌이 불공정한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한 운동장으로 만들 것"이라며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한편 "획기적인 저출산 대책을 시행해 아이 키우고 싶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장 전 의원도 지난달 24일 출마 선언을 통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으로부터 탈출하려면 강력한 경제성장정책이라는 기조 하에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도록 경제 정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경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서비스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의 실험이 국민들의 동의를 쉽게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지금까진 '50대 연대론'의 물꼬를 튼 남 지사와 안 지사의 활약이 신선해 보이지만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남·안 지사는 "세종시를 정치·행정 수도로 만들자"며 수도 이전을 공동 공약으로 내세웠고, 청와대를 파격적으로 해체하겠다는 목소리도 냈다. 여야와 진영을 뛰어넘어 대한민국 공익의 이름으로 협력하겠다는 '협치'도 강조했다. 보수와 진보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위한 연대와 통합의 시대를 열겠다는 열정이 묻어 있다.
TK 정치의 새로운 아이콘인 김 의원과 유 의원도 50대 끝자락의 주자들이다. 경북고 1년 선후배이자 서울대 동문인 이들은 정당은 다르지만 참신한 이미지로 상대 당의 지지층에서도 선호도가 높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두 사람은 최순실 국정 농단사태로 불거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광장 민심과 같은 목소리를 냈고, 지난해 말 차세대 정치 지도자를 꼽는 지역 여론조사에서 모두 두 자릿수를 얻어 나란히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표 확장성이 있는 주자로 꼽힌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직 여론조사 1위는 60대인 문 전 대표가 굳건히 지키고 있는 데다, 이들 50대 주자들의 여론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50%를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짜여 있는 보수와 진보 간 진영 논리와 지역 패권이 큰 절벽처럼 다가오고 있다.
문 전 대표가 '정권 교체'를 구호로 내건 상황에서 '세대 교체'만으로 설득력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60대 이상 정치인들이 조건 없이 물러나고 50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명분이 먹히기(?) 위해서는 겉으로 보기 좋은 선동적인 구호와 이미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젊음=새 정치'라는 등식만으론 난제를 풀기 어렵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앞으로 우리 정치를 이끌 주인공이 '50대 기수'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점이 이들에게 시선이 끌리는 이유다.
각 주자들이 때로는 화합하고 가치를 공유하면서 진영의 논리보다는 협치의 분위기를 연출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남은 것은 진정성이다. 누가 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적임자이고, 누가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통 큰' 지도자인지, 누가 공분에 가까운 국가의 자존심을 지켜내고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담아낼 수 있을지 여부가 결국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지'를 가늠하지 않을까.
/정의종·황성규기자 je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