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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몬스터(괴물)들이 현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바로 '포켓몬고(GO)' 이야기다. 요즘 삼삼오오 뭉쳐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면 십중팔구 포켓몬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포켓몬고는 닌텐도 자회사인 포켓몬컴퍼니와 구글의 사내 벤처기업인 나이앤틱이 공동 제작한 증강현실(AR) 모바일 게임으로 지난해 7월 미국과 유럽에서 출시된 후 큰 돌풍을 일으켰고, 우리나라에서는 올 1월 정식 출시돼 현재 국내 이용자 수만 700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포켓몬고 대박에 제일 배 아파하는 곳은 다름 아닌 중국이다. 포켓몬 캐릭터 상당수는 중국의 고전인 '산해경(山海經)'에서 차용하거나 변형한 것이기 때문이다. 산해경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집이다. 기원전 3~4세기경에 쓰인 이 책에는 중국과 변방지역의 기이한 사물, 인간, 신들에 대한 기록과 그림이 함께 실려있다. 특히 산해경 속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요괴들과 포켓몬 캐릭터를 비교해보면 ▲꼬리가 9개 달린 '구미호'→나인테일 ▲머리가 3개 달린 새인 '창부'→두트리오 ▲팔이 여러 개 달린 인간 '삼신국'→괴력몬 ▲잉어에 날개가 달린 '문요어'→잉어킹 등으로 변형돼 있으며, 한눈에 봐도 포켓몬 상당수가 산해경에서 착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급기야 원조는 중국 고전에 있는데, 돈을 버는 것은 미국과 일본 기업에 있다는 것이 분했는지 지난해 중국에서는 '산해경 GO'라는 짝퉁 게임을 만들었다. 포켓몬고와 배경화면이나 게임 방식은 거의 똑같고 단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산해경에 등장하는 요괴로, 포켓몬을 잡는 '몬스터볼'은 손오공이 머리에 쓰는 '금고아'로 바뀌었을 뿐이다. 네티즌들은 중국의 모방기술에 놀라기도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신화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고 해도 적절한 스토리텔링과 현대화된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콘텐츠로서 활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까맣게 잊고 살지만 혹시라도 콘텐츠화 할 수 있는 우리만의 소중한 신화와 이야기는 없는지 깊이 고민해봐야 할 때다.

/김선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