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소녀상을 '위안부상'으로 호칭을 통일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단발머리 소녀를 위안부라고 부르는 건 어폐가 있다. 위안부(慰安婦)의 '婦'자는 '지어미 부'자로 ①지어미(자기 아내) ②부인, 부녀자 ③결혼한 여자 ④처, 아내 ⑤며느리(子婦)를 뜻한다. '소부(少婦)'는 젊은 부인이고 중국에선 산부인과도 '婦産科'다. 따라서 소녀상을 위안부상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일제 만행으로 끌려간 여성은 거의가 소녀였다. '소녀상'이라는 말 또한 소녀의 모습, 이미지를 뜻할 뿐이다. 그런데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대한민국민단(民團)의 오공태 중앙본부 단장이 6일 우리 외교부를 방문,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이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일 관계 악화로 장사가 안돼 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2012년 MB의 독도 방문도 그로 인해 5~6년간 재일동포의 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소녀상은 부산뿐 아니라 경기도의회의 '독도 소녀상' 추진을 비롯해 안양 평택 양평 등 3곳에서도 설치를 추진, 작년부터 모금활동을 벌였고 충남 홍성의 홍주성(洪州邑城) 안에도 소녀상을 설치하려 했으나 문화재청이 불허했다. 놀라운 건 경기도에만 이미 14곳에 소녀상이 설치됐다는 거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소녀상이 전국적으로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북쪽은 온통 김씨부자 동상, 남쪽은 소녀상으로 넘치게 할 참인가. 서민들 살기가 어렵다. 정치는 개판이고 안보도 위태롭다. 그런데도 굳이 영토분쟁이 심각한 독도에까지 소녀상 어쩌고 할 필요가 있는가. 이걸 안다면 어떨까. 1948년 1월 미 군정 과도정부 입법의원 60명은 '대마(쓰시마)도는 우리 영토이므로 대일강화회의 때 반환을 요청하자'고 의결했다. 한국 정부는 전쟁 중인 1951년 4월에도 미 국무부에 그런 내용의 문서를 전달했다.
그렇다면 '대마도 소녀상'도 부르짖을 것인가. 다행히 정부와 문화재청이 소녀상 설치 규제에 나섰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사 집착에서 확 뒤로 돌아 당당히 미래로 나가는 게 현명하다. 북한, 중국과의 관계 등 국제정세도 급박하다. 살기 위해서도 일본과의 갈등은 그만 피하는 게 상책이고 차선(次善)이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