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무엇인가의 흉내를 내는 것, 무엇인 척 하는 것을 코스프레 한다고 한다. 다시 또 사전을 찾다 보면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말의 뜻은 길다.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자가 그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해당 사안의 피해자 또는 기타 다른 자에게 책임을 덮어씌우고 자신이 오히려 희생자인 척 가장하여 동정심을 유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고자 하는 연속적인 행위들을 말하는 신조어'라고 한다. 그러니까 책임 있는 자, 강한 자가 약한 척, 피해를 당한 척하는 것을 가리켜 곧 코스프레 한다고 한다.
코스프레를 한다고 하면 그러니까 아주 좋은 뜻은 별로 없다. 좋게 보아도 분장 놀이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어 본래의 자기 아닌 신분을 가장한다거나 화장이나 분장을 하고 의상을 자기 직업과는 다른 것으로 바꿔 입어 별종의 효과를 누린다는 쪽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말하면 그 뜻이 더 나쁘게 비칠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생각한다. 원래 화장이나 분장을 하고 옷을 꾸며 입는 것은 신분이 낮거나 외모가 뛰어나지 않거나 힘이 약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연극에는 비극과 희극이 있는데 비극적인 인물을 가리켜 코스프레 한다는 말은 잘 쓰지 않을 것 같다. 희극적인 인물, 웃음을 자아내는 연기를 하는 희극 배우가 익살스러운 분장을 하거나 과장 섞인 의상을 입고 무대에 나와 사람들을 웃길 때 그 코스프레는 악의없는 것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낮고 약하고 부족한 사람, 집단이 높은 척, 강한 척, 넘치는 척 하면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이나 집단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웃음으로 받아들여진다.
거꾸로 생각해서 높고 강하고 넘치는 사람이나 집단이 반대로 낮은 척, 약한 척, 부족한 척하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불쾌해 할 것이다. 왜 높으면서도, 강하면서도, 넘치면서도 그렇지 못한 흉내를 내느냐 말이다.
물론 사람들이 그 사람이나 집단의 본색을 모르고 속아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거짓된 흉내가 적당히 통할 수도 있다. 사리 분별이 정확하지 못한 사람들, 이치를 잘 따져서 전후, 좌우를 살피지 못하는 사람들, 필요 이상으로 감정이나 감각에 휩쓸리기 쉬운 사람들은 약자 코스프레에 곧잘 걸려 넘어진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낮음, 약함, 부족함을 망각한 채, 그렇지 않은 사람들, 집단들의 약자 코스프레, 피해자 코스프레에 넘어가 그들 편이 되어 오히려 자기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을 타매(唾罵)하고 공격한다.
시대가 하 수상하다 보니, 도처에서 이 이상한 형태의 코스프레를 본다. 사자가 애완견 고양이 흉내를 내고 여우가 토끼 흉내를 내고 그룹 사장이 피해자 흉내를 내고 학교 선생들이 학생들 횡포에 시달리는 흉내를 낸다.
예부터 썩어도 준치요,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고 했고 아무리 말이 없어도 닭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했다. 높은 자, 강한 자, 넘치는 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싶을 지경이면 낮은 자, 약한 자, 부족한 자는 그 사정이 과연 어떻겠는가.
그래도 닭을 타고서라도 집에는 가야겠다는 것이다. 천품이 '천품'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을까 한다. 원래 낮고 힘이 없고 부족한 것을 왜 탓하겠는가. 있으면서 없는 척 하니 그게 보기가 미려치 못한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