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후반 미국 서부지역의 역사와 총잡이들의 모험을 다룬 '서부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권총 한 자루만 가지고도 악당 6~7명은 너끈하게 제압한 뒤에 총구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입으로 "후~"하고 부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때 연기 나는 총을 일컬어 '스모킹 건(Smoking Gun)'이라고 한다.
원래 스모킹 건은 '셜록홈즈'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 중 1893년에 발표된 '글로리아 스콧 호(The Adventure of the Gloria Scott)'에 나오는 대사에서 유래됐다. 소설 속 살해현장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그 목사는 연기 나는 총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라며 목사가 살해범으로 지명된 것이다. 용의자의 총에서 연기가 피어났다면 이는 그 총의 주인이 범인이라는 명백한 단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스모킹 피스톨(smoking pistol)'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이후 표현이 바뀌어 스모킹 건으로 쓰이게 됐고 이는 어떤 범죄나 사건을 해결할 때 나오는 결정적 증거를 일컫는 말이 됐다.
1974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글을 쓴 로저 윌킨스 기자는 당시 사건을 조사하던 미 하원 사법위원회의 최대 관심사가 '결정적 증거 확보'라는 말을 하면서 "Where's the smoking gu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후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뉴욕 주 하원의원 바버 코너블이 닉슨 대통령과 수석보좌관 사이에 오간 대화가 담긴 녹음테이프(증거물)를 가리켜 '스모킹 건'이라는 말을 쓰면서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및 심판과 관련, 많은 언론에서 청와대 내부에서 보관 중이던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수첩이나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녹취 파일이 과연 특검의 스모킹 건이 될 것인가 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지금 특검과 대통령 대리인단은 마치 '황야의 무법자'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넘친다. 과연 특검이 수집한 증거물들이 스모킹 건이 될지, 아니면 총알 없는 차가운 총(Cold Gun)이 될지는 헌재의 심판과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김선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