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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성향 확연한 변화, 기업들도 분주
헬스클럽 즐겨찾고 온라인 쇼핑 '능숙'
브랜드 잡화·화장품등 매출 수직상승
고양이 간식·소품 반려동물 용품 불티


중년이 변하고 있다. 한때 중년은 성장이 멈춘, 퇴보하는, 반백의, 위기의, 무기력한 이미지로 오해받았다. 아줌마와 병치해 개저씨라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주 쓰였다.

미국의 언론인 패트리샤 코헨에 따르면 중년의 역사는 150년쯤 됐다고 한다. 중세기 이전에는 인생의 단계에 중년은 없었다. 성인기 다음이 노년기였다. 1860년대 초부터 장년이라는 단어가 사용됐고, 차츰 중년(midlife)으로 바뀌었다. 당시 중년은 능력과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한 세대로 사회를 지탱하는 주역이었다.

칼럼과 소설의 주인공이었고 실제 사회에서도 주인공처럼 보였다. 중년이 무너진 것은 19세기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달과 연결된다. 노동시장에서는 젊은 노동자를 선호하게 됐고, 전쟁터에서도 젊은이가 필요했고, 복구에도 젊은이들의 열정과 감각이 투입됐다. 미디어는 이런 상황을 공고히 했다. 중년 아웃, 청춘 찬양의 시절이었다.

그랬던 중년을 패트리샤 코헨이 '중년이라는 상품의 역사'라는 책까지 쓰면서 탐구한 것은 새로운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요즘 중년은 예전같지 않다. 김씨와 박씨와 이씨는 우리 주변의 중년들이다. 이름하여 뉴노멀 미들에이지(new normal middle age)다.

뉴노멀 중년은 젊은 세대가 가진 취미활동을 즐기는 40~50대를 지칭한다. 넓게는 강한 개성과 경제력을 갖추고 기존 중년들의 소비영역에서 벗어나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이들을 아우른다. 이들은 헬스클럽이나 피부미용실을 즐겨찾고 온라인 쇼핑에 능숙하며 반려동물과 교감한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중년을 좀 더 세분화해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도 한다. 386세대가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중년과 차별화 됐다는 것이다. 386세대는 1960년대에 출생해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고 1990년대에 30대였던 사람들을 말한다.

자기 정체성이 강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변화를 추구하는 특성을 보인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 있었다는 도덕적 우위와 그들만의 독특한 연대감까지 갖추고 있는 세대다. 이들이 50대에 진입해 중년의 새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뉴미들 중년을 맞이하는 사회는 분주하다. 기업들이 가장 먼저 민감하게 변화에 대처하고 있다. 이들이 내놓은 각종 지표들은 앞으로 중년들의 발걸음을 가늠하게 한다.

밝은 표정의 이규철 특검보
연예인 못지않은 화려한 패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규철 특검보. 슬림핏 코트부터 패딩코트까지 다양한 코트를 가지고 있는 그는 '코트왕'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

50대 소비성향을 살펴보면 그 변화는 확연히 눈에 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가 지난해 1분기 남성구매자 연령대를 조사했다. 그 결과 40~50대 비중이 무려 41%에 달했다고 밝혔다.

실제 구매한 상품군을 살펴보면 전년대비 브랜드 잡화 판매율이 82%가 증가했고, 수입명품은 51%, 화장품·향수도 50% 까지 늘어났다.

BC카드 빅데이터센터 조사 결과도 50대 중년 남성들의 강화된 소비력을 증명한다. 지난해 온라인 쇼핑의 결제 비율이 53.6%였고 헬스클럽은 188.8%까지 치솟았다. 피부와 미용에 지출한 비용도 107.2%가 증가했다. 50대 남성들이 세련된 꽃중년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인터넷 혹은 모바일에 접속해 상품을 클릭하고 결제한 것이다.

특히 반려동물 용품을 구매하는 따뜻한 50대 남성도 대폭 증가했다. 그 중에서도 김씨 사례처럼 '냥이 집사' 아재들은 지갑을 활짝 여는 편이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이 지난해 상반기 4050 중년남성의 반려동물용품 판매율을 비교한 결과 전년 대비 평균 20% 가까이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4050을 좀 더 쪼개서 살펴봐도 40대는 15% 상승했지만, 50대는 26% 늘어났다.

상품별로는 고양이 간식이 78%, 고양이 패션소품이 67%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고 고양이 집이나 장난감이 39%, 고양이 사료가 25%, 고양이 미용용품은 11% 각각 증가했다.

주방가전을 사는 40~50대 남성들도 전년과 비교해 29% 늘어났는데 '요섹남'은 2030세대만은 아닌 셈이다.

꿍이 이불
젊은 층에겐 다소 낯선, 새로운 50대의 등장은 유통업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가족을 위해 죽도록 일만 하던 지난 50대와 달리,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연봉을 바탕으로 구매력이 강한 이들의 개인 소비 증가는 분명 유통업계에 호재다. 이때문에 업계에선 '아재'들을 겨냥한 기획전을 연일 개최하며 아재 손님을 모시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요즘 50대 남성들은 트렌디한 패션 잡화부터 걸그룹 앨범, 반려동물 용품 등 '젊은 소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이들에 대해 "과거 40~50대 남성들은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그대로 살만큼 의류 쇼핑에 소극적이었다. 반면 지금의 50대는 다양한 브랜드와 스타일을 스스로 조합하는 감각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新 아재들의 기저에는 386세대라는 독특한 성장 배경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1960년대에 출생해,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고 1990년대에 30대였던 사람들을 386 세대라 지칭한다. 나열된 연도만 보더라도 그들의 성장환경이 얼마나 파란만장했을지 짐작이 간다. 대학입학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도 1980년대로, 이들 중 상당수가 고등교육을 경험했다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세대의 특징이다.

폭풍같은 경제성장 이면에 열망처럼 사회의 민주화를 부르짖었다.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시기에 민주화운동은 가장 격렬하고 대중적으로 확산됐고 이들의 저항의식을 통해 우리 사회는 6월 항쟁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이들은 또한 결혼을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며 남성과 여성의 성 구별을 거부하고 국내외 대중문화를 탐닉하는 데 시발점이 됐던 세대이기도 하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