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빚진 죄인, 빚진 종'이라고 했고 구약성서(잠언)에도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債主)의 종이 된다'는 구절이 있다. 왜 죄인이 되고 종으로 전락하나? 빚진 자만 억울한 게 아니라 빚을 준 빚쟁이도 '채귀(債鬼)'라고 한다. 몹시 조르는 빚쟁이가 채귀(빚 귀신)다. 중국 빚쟁이는 더 무섭다. 고리채는 '염라대왕 빚(閻王債:이엔왕자이)'이고 고리채 이자는 '염라대왕 이자(閻王利息:이엔왕리시)'다. 일본에서도 갚아야 할 물리적 정신적 부채가 '오이메(負目)'다. 눈알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부담스럽고 위험하다는 뜻이다. 영어에서도 고리대금업자는 '빚 상어(loan shark)'다. 하필 왜 물어뜯는 상어인가. 천명(天命)이나 죽음도 '자연의 빚(debt of Nature)'으로 여기고 loaning이 '좁은 길'이다. 평생 빚 안 지고 살 수는 없는가.
작년 가계 빚이 1천344조원, 가구당 평균 7천만원이라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21일 발표했다. 1년 새 141조원이나 늘었고 빚으로 연명하는 한계가구가 182만 가구라는 거다. 1천344조원은 금년 국가예산 400조원의 3배가 훨씬 넘는 어마어마한 가계 부채다. 1인당 GDP가 3만 달러에 육박하는 대한민국 맞나? 최근 대출 이자도 가파르게 오르는 데다 높아진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저 신용 저소득층이 제2금융권으로 대거 몰린 탓이라지만 국가 경제에 적신호다. 줄어드는 소비→기업 생산과 고용 위축→가계 소득 감소→다시 소비 감소의 악순환을 부르고 미국이 또 금리를 인상해도 우리는 심각한 가계 부채로 옴치고 뛸 수도 없는 판국이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정치가이자 법가인 관중(管仲)이 자신의 '관자(管子)' 치국(治國)편에서 역설했다. '치국평천하의 길은 백성을 잘살게 하는데서 비롯된다.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고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며 필선부민(必先富民)을 강조했다. 반드시 먼저 백성이 부유하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그게 바로 관중이 '상가(商家)의 시조'로 불리는 이유다. 중국 역사의 정치교범인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당 태종이 역설한 것도 백성들이 빚이 없도록 하는 부민정책이었다. 경제도 안보도 시국도 총체적 위기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