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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그랑기뇰 펴낸 이태형 작가.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그랑기뇰, 19세기 佛 공포 단막극
경험 '리얼'묘사 인간·세상 직시
경계 허물때 더좋은 작품 나올것


■ 그랑기뇰┃이태형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263쪽. 1만2천원


그랑기뇰
"저는 리얼리스트입니다."

그랑기뇰은 19세기말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단막극이다. 살인, 강간, 시신 해체, 전염병이 주요 테마이고 유령이나 시신, 돌연변이 등 사람이 아닌 것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고, 대체적인 분위기는 그로테스크하고 축축하다.

공포와 선정성을 강조하다보니 극장에서 피보라가 몰아치는 경우도 있었다. 구토나 실신한 관객수가 요즘 TV오락물에서의 시청률처럼, 관심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어른들을 위한 구경거리, 오락물의 한 부분이었던 그랑기뇰을 이태형(36) 작가가 책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작가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짐작할 수 없는 길고 무거운 자루를 질질 끌며 책 안을 돌아다니는 것 같다. 그는 자주 끔찍한 장면을 꺼내놓는다.

썪어 흐르는 내장이나 천장까지 솟구치는 핏물, 기괴한 변형을 태연하게 묘사하며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러나 그랑기뇰적인 것에 치우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들은 문학의 한가운데 속해있다.

인간을, 세상을 직시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모든 인물, 배경, 장면은 내가 보고 경험한 세계를 '리얼'하게 쓴 것입니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경험한 세상에 대한 감상문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오히려 너무 직접적으로 세상을 묘사한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작가가 만들어낸 강렬한 이미지는 평범한 것에서 시작된다. 가령 여러 사람의 얼굴 가죽을 이어붙인 패치워크는 '페르소나'에서 착상했다. 이런 이미지와 사건에 일단 적응을 하면, 본질이 발견된다. 또한 소설 곳곳에는 그가 경험한 다양한 세상이 드러나는데, 의외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작가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로드킬 당한 짐승이 징그럽거나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적한 길에서 로드킬 당한 짐승을 발견하면 차에서 내려 직접 거두기도 해요. 반복해서 짓밟히는 동물도 불쌍하고, 그걸 치고 갈 수밖에 없는 운전자도 불쌍해서요."

어쨌든 그의 소설은 '그랑기뇰'이고, 그래서 장르적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리얼리스트라서, 그는 이런 견해에 반박한다. "우리나라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나누어 상상력을 서로 억제하고 있어요. 에드거앨런포우가 우리나라에는 장르로 구분 돼 있는데, 미국에서는 교과서에 실린 문학가예요. 영역을 두고 구분하기보다 서로 섞여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