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외교언어 중에는 유독 프랑스어가 많다. 외교적으로 항의를 뜻하는 '데마쉬(Demarche)', 각국 정부 사이의 국제회의나 수뇌회담 등의 결과에 대한 공식 성명인 '코뮈니케(Communique)', 외국의 정보수집 등을 목적으로 파견되는 전문직원 또는 수행원을 뜻하는 '아타셰(Attache)' 등 프랑스어를 모르면 외교를 논하기가 힘들 정도다.
특히 프랑스어는 국제회의에서 공식용어로서의 위치도 확고해 UN, UNESCO, IOC 등에서 공용어로 사용되며 그 정확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외교문서는 영어와 함께 프랑스어로 병기된다. 이는 프랑스가 17~19세기 동안 유럽 내에서 큰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유럽의 보편적인 언어로 자리매김해 왔고, 역사적으로 영국·독일·러시아 등에서 귀족사회를 중심으로 프랑스어를 구사하면서 사교 언어로서의 역할까지 가미됐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특히 '아그레망(agrement)'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외교사절을 파견하려 할 때는 상대국의 사전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 동의를 아그레망이라고 한다. 사절의 임명 그 자체는 파견국의 권한이지만, 사절을 받아들이는 접수국은 특정 이유를 내세워 기피 할 수 있다. 현재의 관행으로는 미리 접수국의 의향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 조회에 대해 이의가 없다고 답하면 '아그레망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달 말 특검 조사에서 유재경 주미얀마대사가 전문 외교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순실 씨의 추천으로 대사가 됐다는 사실을 시인한 바 있다. 그리고 외교부가 유 대사의 내정자 신분 당시 자격심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얀마 측에 아그레망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의 수첩에는 '삼성 아그레망'이라는 표현까지 쓰여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불거진 직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 아그레망'을 출범시켰다. 이는 세계 각국의 아그레망을 받아 활동했던 사절들이 모인 외교자문 그룹인데, 국민들로부터 대권에 대한 '동의'를 받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대선이 끝나봐야 문 전 대표가 아그레망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분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김선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