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자체가 세수를 늘리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기업체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본사와 공장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던 (주)흥진의 사례는 '구호와 실행'이 따로 노는 지자체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 1972년 용인시 상하동에 문을 연 (주)흥진은 섬유 업체로 70여명의 일꾼을 거느렸다. 1990년대에는 수출 500만달러 달성 등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돼 장관 및 도지사 표창까지 받았다. 잘 나가던 (주)흥진에 암운이 드리워진 건 주변에 도시개발이 이뤄지면서부터다.

지난 1992년 용인시는 (주)흥진의 본사 및 공장의 출입구와 맞닿은 왕복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면서 기존보다 0.75~0.82m 정도 높여버렸다. 이 때문에 출입문의 경사가 16.2%로 높아져 물건을 수송해야 하는 트럭·버스 등 대형차종의 진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용인시는 또 (주)흥진 맞은 편에 아파트 개발로 우수량이 늘어난 만큼 도로를 횡단하는 배수관을 최소 직경 1천㎜로 사용해야 하지만 800㎜ 배수관을 그대로 사용해 역류의 단초를 제공했다. 아울러 200m 간격으로 빗물받이를 설치토록 규정한 도로 설계와는 달리 (주)흥진 쪽 도로에는 이를 설치조차 하지 않았다.

'단차(공장과 도로의 높이 차이)'와 '침수' 피해 등으로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된 (주)흥진 측은 용인시에 이를 시정해 줄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하지만 시는 도시개발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주)흥진은 결국 지난 2003년 기존의 본사 및 공장을 유령 상태로 놔둔 채 지방으로 이전했고, 용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이와 관련해 '도로 단차 및 침수가 용인시의 도로 설치·관리 및 아파트 개발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주)흥진 권영기 대표이사는 "침수 피해 및 도로 단차에 따른 문제로 공장 운영의 고충을 용인시에 수십번 넘게 민원을 제기했지만 받아 드려지지 않아 결국 행정소송을 하게 됐다"며 "용인시가 경기도의 수출 유망기업을 지방으로 내쫓은 셈"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유망 기업을 사실상 내쫓은 것도 모자라 세수로 피해보상금 7억7천만원을 보상해야 할 처지에 놓인 용인시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항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윤재준·황준성기자 yayajo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