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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섭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 윤리경영실장
'고향'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누구에게나 다정함, 그리움, 안타까움이라는 정감을 주는 말이면서도 정작 '이것이 고향'이라고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고향은 나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정이 든 곳이며 일정한 형태로 내게 형성된 하나의 세계이다. 고향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어느 고을 어떤 지점을 제시할 수도 있고, 언제부터 어느 때까지 살았다는 시간도 제시할 수 있으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각인각색으로 달리할 수 있다. 타향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곧장 갈 수 없는 안타까움의 상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엊그제 30년 동안 살아온 정든 수원을 떠나 고향으로 이사를 했다.

직장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이래 수많은 희로애락을 뒤로하고 내 고향 '퇴촌'으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개국 공신인 조영무 선생이 낙향해 조용하게 일생을 마쳤다는 말에서 유래한 '물러갈 退, 마을 村'의 퇴촌.

서울에 인접하면서도 각종 규제로 인해 옛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팔당댐이 건설되기 직전인 1973년 무렵만 해도 경안천 하류에는 1급수에만 서식하는 은어를 볼 수 있었던 물 맑고 산 좋은 고장이다.

지금은 수도권 시민들이 휴식공간으로 자주 찾는 지역이 되었고 급격한 도시화 등으로 자연환경이 많이 훼손되어 안타까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옛 그 모습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곳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저런 맛집이 성업 중이어서 평일에도 사람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매달 6월에 개최되는 토마토축제도 유명하다.

또한 순수함의 상징인 가수 송창식씨, 희극인 대부인 故 배삼룡씨를 비롯한 많은 연예인과 가족들이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휴식과 마음의 여유를 갖던 지역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고향을 떠올리면 아련했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며 추억하게 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비록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티 없이 맑고 순수했던 그 시절을 반추할 수 있는 참으로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당시 퇴촌은 전기가 안들어오는 곳이라 텔레비전도 없었기에 세계적인 스타 펠레가 한국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8㎞를 걸어서 축구경기를 시청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중략).

암울했던 일제하에서 해방을 염원하는 우리 국민의 마음이 담긴 시 '고향의 봄'이다.

나라 잃은 설움이 내재돼 있는 시 이기도 하지만 고달픈 우리네 삶 속에서 엄동설한을 보내고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이 고스란히 담긴 노랫말이기도 하다.

다음은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느 것 하나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거나 불평불만을 나타내지 않고 그대로의 삶에 순응하면서 살았던 고향.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도는 어머니와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훈아의 노래 '울 엄마' 가사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울컥하게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엄마가 그리워진다.

비가오면 비 맞을세라/험한 세상 넘어질세라/사랑땜에 울먹일세라/회초리치고 돌아앉아 우시던/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중략).

'귀향'을 결심하고 나서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솔직히 나이 60을 넘긴 시점에서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앞선다.

어쩌면 익숙해진 지금 이대로의 위치에서 사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38년 7개월의 공직을 인생 1모작, 1년 6개월이라는 공공기관 직책을 인생 2모작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 3모작은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삶'으로 승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평범한 진리를 곱씹어 보면서 말이다.

/김한섭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 윤리경영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