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특정예술가 지원금지보다 문화향유권 차단·방해 핵심
"권력 입맛대로 작품 취사선택 '세뇌' 시도나 다름 없어" 지적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최대 피해자는 예술가가 아닌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다."
정세훈(62·시인) 인천민예총 이사장이 최근 한국민예총 권역 상임 이사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됐다. 지난해 총회에서 전국을 4개 권역(수도권·충청권·영남권·호남권)으로 나누는 조직을 정비한 민예총은 올해 초 권역을 총괄 대표하는 권역 상임 이사장직책을 신설하고 그를 이사장에 추대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진보' 예술가 단체인 한국민예총 소속 예술가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시민 곁에서 그들을 응원하는 한편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문제와 관련 국가정보원을 고발하는 집회를 서울에서 마치고 온 정세훈 권역 상임 이사장을 지난 7일 오후 인천 구월동에서 만났다. 그는 이번 탄핵 정국 속에서 핵심 사안 가운데 하나로 불거진 이 '블랙리스트' 문제를 '남(예술가)이 아닌 나(국민)'의 문제로 생각해달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블랙리스트 사태는 특정 예술가들이 정부로부터 창작활동을 위한 지원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여러 장르의, 다양한 담론을 담아낸 예술 작품을 향유 해야 할 국민의 권리를 정부가 차단하고 방해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이 최대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가라는 특정 집단의 이해득실 문제로 봐선 결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그는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예술 활동은 늘 기존의 정치권력보다 앞서는 이야기를 해왔고, 방향성을 제시하며 권력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게 예술의 속성이었다"며 "하지만 권력이 정부가 입맛대로 국민이 즐겨야 할 예술 작품을 취사선택했다는 것은 왕조시대에서 조차 없던 일로 국민을 '세뇌'하려는 한 시도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를 혹시나 예술가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예술인들이 제기한 피해배상 소송을 곱지 않게 보는 경우도 일각에선 있다고 한다.
그는 이에 대해 "예술인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도, 정부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을 요구하는 경고 차원의 상징적인 의미일 뿐 보상을 받으려는 것이 본질은 아니다"라며 "모든 관련자가 처벌을 받고, 이를 방지하는 제도가 정비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여부와는 별개로, 권력이 다시는 이러한 일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힘을 합해 싸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그는 "어떤 권력도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뺏으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음을 깨우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