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보수 진영에 속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대선주자들이 '포스트 탄핵' 첫 주말인 11일 아무런 공개 일정을 잡지 않았다.

각자 비공식 캠프 회의 또는 자문단과의 만남 정도를 이어가며 정국 구상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전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으로 60일간의 숨 가쁜 조기 대선레이스가 시작했음에도 이처럼 '신중 모드'를 보이는 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무엇보다 현재의 당적 또는 탄핵 찬반을 떠나 박근혜정권 창출에 일조한 세력으로서 탄핵사태에 따른 국가적 혼란과 국정 난맥상에 대해 자숙의 시간을 갖는 의미가 있다.

바른정당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 측 관계자는 "국가적 위기 상황의 엄중함을 고려해 정치권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국가적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내도록 미력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숙의하고 향후 행보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같은 당 남경필 경기도지사측 관계자도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란 국가적 불행으로 상처받은 국민의 삶을 함께 보듬고, 희망과 용기를 드릴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대선주자들도 비슷한 설명을 내놨다.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은 "탄핵 결정에 따른 사회적 대립과 갈등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에 힘쓰겠다"고 말했고, 원유철 의원은 "향후 정국 구상을 위해 공식일정을 잡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인제 전 최고위원이 그동안 주말마다 참여해온 탄핵반대 집회에 나가지 않기로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또 한편으로는 보수진영의 텃밭으로 불리는 영남권에서도 남다른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여겨지는 '친박(친 박근혜)' 지지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일종의 '애도 기간'인 동시에, 향후 보수표심의 향배를 가늠하기 위한 숨 고르기의 측면도 있어 보인다.

특히 바른정당으로서는 이번 박 전 대통령 파면으로 탄핵 주도와 분당의 당위성을 확인받았을 지언정 '배신자 낙인'을 온전히 떨쳐냈다고 보기엔 이른 만큼 더욱 행동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제 아무리 중도를 표방하며 외연 확장을 꾀한다고 해도, 결국 보수에 뿌리를 둔 정당으로서 영남권의 지지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대선 승리는 커녕, 향후 제3 지대와의 연대에도 지분을 주장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당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 지도부는 즉시 헌재 판결에 승복을 표명하고 대선 준비에 착수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불복 세력에 동조하고 있는 일부 '강성 친박' 의원과 그 지지자들을 안고 가야 한다는 게 숙제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크게 뒤처지는 데다가 마땅한 주자도 부재한 상황이 걱정이지만, 그렇다고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자니 '전직 집권여당'으로서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