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신에 뜬 이정미는 李貞美지만 '정미'라면 하얀 쌀 '精米'나 따뜻한 정의 맛 '情味'보다는 '正味'부터 연상된다. ①물건의 외피(外皮)를 제외한 내용물 ②전체 무게에서 포장 등의 무게를 뺀 알짜 무게를 뜻하는 말이 '正味'지만 '쇼미'로 읽는 일본식 용어다. 그런데 엊그제 박근혜 탄핵 판결문을 낭독하던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55)은 그 이름 뜻 '알짜와 알맹이'처럼 빈틈없이 똑똑해 보였다. 2014년 첫 정당 해산 심판(통진당)에 이어 첫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그녀는 어제 헌재 재판관에서 퇴임했지만 그녀와 맞섰던 대통령 대리인단의 김평우 변호사(72)는 어제 또 신문에 격문을 띄워 '이 나라 법치주의는 사망했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박근혜 탄핵에 결정적 주도 역할을 한 건 김평우가 아닌가 싶다. 재판 과정의 돌발 행동과 막말이 큰 반발을 샀고 결국 판결에 독(毒)이 됐다는 거다. '감정의 동물'이 인간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는 ▲이정미 소장 대행이 변론 종료를 공식 선언했는데도 끝내지 않겠다고 버티며 '12시에 변론을 마쳐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느냐'고 했고 ▲국회 측의 13가지 탄핵소추 사유를 '섞어찌개 범죄'라고 했는가하면 ▲'헌법재판관들은 청구인(국회)측 대리인이지 법관이 아니다'라고 매도했다. 그러자 이정미 대행은 뒷목을 잡으며 괴로워했고 다른 재판관들 얼굴도 무섭게 굳어졌다. 게다가 서석구 변호사는 태극기까지 펼쳐 보이는 돌출행동까지 연출했다. 그러고도 그들 박근혜 측은 기각 또는 각하를 바랐던 것인가. 김평우 변호사는 소설가 김동리(1995년 82세로 타계)의 차남이다. 한국 문학의 큰 별이자 소설 '황토기' '무녀도' '등신불' 등 작품으로 동시대 모든 문학인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런 아버지의 문학적 업적까지 깎아내리는 자식이 김평우 아닌가.
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길 가던 돌쇠 떡쇠 먹쇠가 들어도 상 찡그릴 잘못이다. 그런데도 탄핵을 당해 사저로 돌아가리라고는 단 몇%도 상상을 못했던 것인가. 만약의 대비를 차마 말 못했다는 참모진도 비굴의 극치다. 게다가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말을 대변인을 시켜 남겼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 괴롭도록 궁금하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