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1601001206400058441

2000년대 초반 학비를 벌려고 쓴 '공부기술'이라는 책이 5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려 잭팟을 터뜨린 조승연 작가는 영어·불어·이탈리아어 등 7개국어를 구사해 '언어천재'라 불린다. 그는 무언가 새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 같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한 개도 마스터 하기 어려운 외국어를 몇 개씩이나 습득하더니 요즘엔 한문과 중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언어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에도 관심이 있어 뉴욕대 경영학과인 스턴 비즈니스 스쿨과 줄리아드 음대 이브닝 스쿨을 동시에 다니고, 졸업 후 파리로 건너가 1년간 소르본 대학에서 불어를 배운 후 '에콜 뒤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중세 그림을 전공했다.

이렇게 언어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가 하루는 신사들의 스포츠인 펜싱을 배우기 위해 나이 든 한 선생님을 찾았다. 그리고 노사부로부터 펜싱의 본래 취지를 깨닫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올림픽 정식종목이기도 한 펜싱은 공정한 채점을 하기 위해 요즘은 전자장비가 보편화 됐지만, 예전에는 승부를 그런 식으로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펜싱이라는 스포츠는 워낙 칼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점수를 매기기가 어려운 종목이다. 그래서 칼을 찌른 사람조차도 자신이 상대방을 제대로 찔렀는지 빗나가게 찔렀는지 파악이 힘들다. 그런데 단 한 사람만큼은 점수가 났는지 안 났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바로 칼을 맞은 사람이다. 축구에서 득점을 하면 '골~'을 외치듯, 펜싱에서 득점을 하면 '투셰(Touche)'라고 외친다. 이 투셰는 '찔렀다'라는 뜻이 아니라 '찔렸다'라는 뜻이다. 즉 득점한 사람이 아니라 실점한 사람이 손을 들고 상대편한테 점수를 주는 것이 펜싱의 법도라는 것이다. 결국 펜싱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 무공이 올라가는 정말 신사적인 스포츠였던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의 판결을 통해 파면된 후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사저에 들어간 뒤 아직까지 두문불출이다. 반면 그에게 파면을 선고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는 한비자의 구절을 퇴임사로 남겨 박수를 받으며 떠났다. 언제쯤 우리는 '멋있는 패배'의 미덕을 아는 리더를 얻게 될까.

/김선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