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시설 설치 의무없고
학교·도로 고려 대상 아냐
건축주 다른 단지 공동분양
밀집지 방범·주차 등 민원
삶의 질 훼손… 민민갈등도
전문가들 "제도 보완 시급"
"출근시간에 마을 길 벗어나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이사 안 왔죠."
예술계에 종사하는 김(41)모·장모(여·38)씨 부부는 2015년 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아랫내유마을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남들보다 결혼이 늦은 만큼 고민도 깊었던 김씨 부부는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전원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껴 단독주택을 구매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 부부는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하게 됐다. 주변에 30세대 미만 다세대주택이 '우후죽순식'으로 들어서더니 순식간에 빌라촌으로 돌변,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장씨는 "사람은 많아졌는데 동네에 차량 교차로도 보행로도 없다"며 "전원생활은커녕 아이 키울 엄두가 안 난다"고 호소했다.
■ 다세대 난립
=이런 상황은 아랫내유마을에 국한된 게 아니다. 최근 들어 고양시 전역이 '다세대주택 난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30세대 미만 다세대주택은 일산서구 덕이동, 덕양구 내유동, 일산동구 식사동 등 계획관리지역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다.
2014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덕이동 5천338세대(394건), 내유동 1천212세대(109건), 식사동 1천23세대(70건)가 건축허가를 받았다.
다세대주택을 30세대 미만으로 지으면 아파트나 단독주택단지 등에 비해 여러 건축규제를 피할 수 있다.
김씨 부부가 사는 내유동의 경우 현재 대규모 주택단지 여러 곳이 조성됐으나 개별적으로는 30세대 미만이어서 건축주들은 주택사업계획 승인 대상에서 제외됐고, 노인정이나 어린이놀이터 등 공동시설 설치 의무를 떠안지 않아도 된다.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대상도 아니어서 애초 학교·도로·상하수도 등 기반시설도 고려되지 않는다.
다세대주택이 난립하는 데는 주택사업자들이 이런 법의 맹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측면이 크다. 동별 건축주는 제각각이지만 분양할 때는 한 사업자가 이를 하나로 묶어 공동단지 형태로 진행하는 식이다. 11개동 87세대 규모인 내유동 H빌라는 건축주가 5명에 이른다.
■ 29세대의 문제
= 현재 경기도 내 재개발지역의 상당수가 다세대주택단지로 들어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난개발식으로 들어서는 다세대주택은 삶의 질이나 도시의 미래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실제로 '29세대 다세대주택' 밀집지는 생활폐기물 처리문제를 비롯해 방범·주차문제, 재난 발생 시 소방도로 확보문제 등 각종 민원이 적잖게 발생하고 있는 상태다.
고양교육지원청의 경우 예상치 못한 수요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 덕이동 한산초교와 내유동 내유초교를 긴급 증축해야 했다. 이밖에 급작스런 마을 팽창에 따른 기반시설 등의 문제로 기존 주민과 이주민 간 '민·민갈등'도 심심찮게 불거지고 있다.
시는 다세대주택 난립의 폐해를 인정하면서도 관련법 상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시의 한 관계자는 "영문도 모르고 입주했다가 뒤늦게 도시기반 미비를 알아챈 주민들의 민원이 갈수록 거세진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제도보완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고은태 중부대 건축학과 교수는 "토지이용 규제를 강화하는 일이 드문 데다 재산권 저항 등 어려움이 있겠지만, 시 조례 건축조항을 보강하고 지구단위계획과 도시계획을 수정하는 식으로 '계획개발 프레임'을 잡아가는 게 현행법상 최선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고양/김재영·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