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
일본서 130만부 돌파한 화제작
동인천 작은 서점에서 열린 워크숍
사람들 특유의 반짝이는 생기와
즐거움을 만들어낸 공기는 충만
따뜻했던 그날의 여운 아직도 남아
퇴근길에 우연히 본 '열려있어요! 오늘 저녁 7시 30분에 하루키 워크숍 진행합니다'란 문구가 날 이곳으로 이끌었다. 워크숍의 타이틀은 '기사단장 죽이기 프롤로그를 읽어보자'.'기사단장 죽이기'는 지난달 24일, 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일본에서 초판 130만 부를 돌파한 화제작이다. 이 워크숍을 기획한 번역가 이나래 씨는 소설의 한국어 번역판 출간을 기다리며,'기사단장 죽이기'의 프롤로그와 전편의 내용을 알아보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수요일 저녁, 모인 사람은 서점 주인과 기획자까지 총 다섯 명. 처음 만난 우리는 기타 치는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파란색 컵에 우려낸 차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색한 분위기는 하루키 얘기가 나오면서 순식간에 활기차졌다. 한국에서 출간되는 하루키 책표지에 대한 성토에 이어 '노르웨이의 숲' 30주년 기념 에디션의 표지가 얼마나 예뻤는지, 그 책을 들여놓자마자 팔렸다는 서점 주인의 소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가 오간다. 모두 이 동네 사람이거나, 동네에 자주 오는 사람들이다보니 이야깃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직업도, 나이도, 성별도 다르지만 "우리 동네에도 이런 데가 생겼어!" 기뻐하며 서점에 들렀다는 점만큼은 꼭 닮아있다.
그렇다면 이 작은 서점에서 어쩌다 이런 워크숍이 열리게 된 걸까? 손바닥만한 독립 출판물을 서점에 입고하러 왔던 기획자와 작은 서점을 막 오픈한 주인이 의기투합해 내놓은 첫 결과물이 바로 이 날의 워크숍이다.
일본 나가노의 대학에서 철학사상을 공부하고 번역가로 활동 중이라는 젊은 기획자는 하루키가 살아서 활동 중인 동시대에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했다. "하루키 씨는 알까요? 한국하고도 동인천의 작은 서점에서 아직 출간도 되지 않은 당신의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살짝 떨리기까지 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하루키의 열렬한 팬은 아니라는 말은 아무래도 겸손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기획자가 한국 인터넷서점에 발 빠르게 예약 주문을 넣은 터라, 3일 만에 도착했다는 원서에는 중간중간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그 덕에 참가자들은 일본 원서의 표지와 띠지 내용, 본문에 삽입된 명함 그림까지 감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어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들을 수 있었다. '오늘, 짧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얼굴 없는 사나이'가 내 앞에 있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강렬했다. 주인공이 다락방에 은폐된 이상한 그림을 발견하면서 이 비밀을 탐색하는 과정을 그려낸 이야기에 모두 빠져들었다.
한 권만 50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 두 권을 원서로 읽고 워크숍을 자발적으로 준비한 기획자의 열정은 물론이고, 이 시간에 맞춰 서점의 진열대를 하루키의 책들로 가득 채운 서점 주인의 센스가 돋보였다. 워크숍 내내 자신의 즐거움을 아무 대가 없이 나누려는 사람 특유의 반짝반짝한 생기와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기는 충만 그 자체였다. 갑자기 참석한 이 자리 덕에 하루키의 신작 소설은 내게로 성큼 다가왔다. 아직 판권을 살 출판사도 정해지지 않았다 하니 한국어판이 나올 때까지 시간은 많다. 소설에 등장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오페라를 들어보면서 그때까지 마음껏 상상을 즐겨보려고 한다.
이날 워크숍은 두 시간 반을 훌쩍 넘기고서야 끝났다. 서울이었다면 집에 갈 걱정에 엉덩이가 들썩거렸을 시간이지만, 인천이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했는지 모른다. 따뜻하고 즐거웠던 그날 저녁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이번주 토요일(3.25)에 같은 워크숍이 한 번 더 열린다고 하니, 하루키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인천의 작은 서점에서 열리는 특별한 시간에 함께하시길!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