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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고 부유물 뒤덮인 세월의 아픔-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 선체가 침몰 1천73일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23일 오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 침몰사고 현장에서 세월호가 침몰 3년만에 녹슬고 부유물로 뒤덮인 선체 일부를 수면 위로 드러내면서 인양되고 있다. 진도 동거차도/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보퉁골 생활 935일 고대했던 순간
배타고 현장 간 미수습자 가족 등
인양 작업 진전 될수록 얼굴 생기
"부모라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떠오른다, 떠오른다. 우리의 아들 딸들이. 304명의 넋이. 얼마나 차가웠니 외로웠니."

세월호 인양 현장과 3㎞가량 떨어진 전라남도 진도군 동거차도 보퉁골. 지난 2014년 9월 1일부터 이곳에 자리 잡은 유가족 중 7명은 세월호 인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2일 오후 8시50분부터 자리를 뜨지 못했다.

몰려든 취재진에게 엄숙한 분위기를 요청했고 텐트에서는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인양과정을 촬영했다. 또 배를 타고 인양 현장 앞에 나간 일부 유가족·미수습자 가족들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양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23일 새벽 수면 위로 세월호의 모습이 보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보퉁골의 유가족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세월호가 올라온다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쳤다. 드디어 세월호가 떠오르고 있다. 이제는 안전한 뭍으로 오를 수 있다. 그러면 진실규명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아들·딸과 이별한 지 3년 만이다. 지난 2014년 9월 1일 보퉁골에 자리를 잡은 뒤 93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고대했던 모습이었다. 사고 이후 팽목항과 안산분향소, 광화문 등에서 진실 규명과 세월호 선체인양을 촉구하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보퉁골에서의 935일은 슬프고 서럽고 연약했지만, 치열했다. 한 달에 1~2번 안산시의 집에서 식료품·생활용품을 진도 팽목항을 거쳐 이곳으로 옮겨왔다. 통조림과 인스턴트 식품은 어느덧 주식이 됐다.

땅을 파서 만든 가로·세로 1m의 간이 화장실은 모기·추위와 싸우는 법을 가르쳐줬다. 비바람을 막아준 얇은 비닐과 두세 겹으로 깔린 박스, 낡은 담요는 감사하는 법을 알려줬다.

3m, 6m, 인양작업이 진전을 보일수록,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오를수록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간절함도 높아져 갔다. 오후 8시, 세월호가 8.5m까지 떠올랐다. 가족들의 얼굴에는 약간의 생기가 돌았고, 보퉁골을 뒤덮고 있던 진한 긴장감도 옅어졌다.

한 유가족은 "엄마라서 아빠라서 차마 포기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며 살짝 눈물을 훔쳤다.

이날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세월호 국민조사위원회, 4·16연대가 발표한 성명서의 내용은 명료했다. "진실규명 희망이 인양됐다."

진도 동거차도/전시언기자 coo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