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이 성공해 진실이 밝혀져 유가족들도, 우리 섬마을도 평화를 회복하길 소원합니다."
지난 3년간 세월호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슬픔을 나눈 사람들이 있다. 최서남단에 위치한 동거차도의 주민들이다. 70여가구 150여명이 사는 작은 섬이지만, 지난 3년간 묵묵히 유가족들을 지원한 숨은 조력자였다.
사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뒤 마을은 활력을 잃었다.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섬 주변 바다를 덮치면서 주민 상당수가 생업으로 삼고 있는 미역, 톳 양식을 할 수 없었다. 품질 좋기로 유명한 멸치잡이도 불가능해졌다.
무엇보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섬을 뒤덮자 일상생활도 조심스러워졌다. 유가족들이 늘 머물면서 생일잔치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신 지난 3년간 늘 손님맞이를 했다. 섬 내 숙박시설이 아예 없어 유가족들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든 언론사 직원들에게 방과 부엌을 내줬다. 식사와 생필품 제공도 도맡았다.
평생 동거차도에서 살았다는 이영현(80)씨는 "섬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지만, 부모의 심정을 알기에 도우려 노력했다"며 "세월호 3년 동안 유가족도, 기자들도 고생이 참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인양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동거차도 주민들도 다시 행복한 일상을 준비하고 있다.
김원래(80·여)씨는 "미역 양식과 멸치잡이를 하는 평화로운 섬으로 다시 돌아갈 것 같다"며 "이제는 우리 섬이 슬픈 일 말고 기쁜 일의 상징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거차도도 세월호 인양을 반기는 것일까? 유가족들이 텐트 생활을 하는 보퉁골 초입의 벚나무가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진도 동거차도/전시언기자 cool@kyeongin.com
[3년만에 떠오른 세월호]"3년간 늘 손님맞이… 섬마을 일상 되찾길"
동거차도 주민들 '숨은 조력자'
기름유출 생업 지장 피해 견뎌
입력 2017-03-23 22:28
수정 2017-03-2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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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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