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들의 해상시위
정부의 바닷모래 채취 연장 조치에 반발하는 어민들이 대규모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민간공급" 사업기간 연장에 반발
어민들 "더 못살겠다" 총궐기·해상시위
해수부도 조건 강화·국책용 제한 선그어


레미콘등 부족·가격급등 건설사 직격탄
주무부처 국토부 골재 파동 현실화 난감
민관협의체 조율·국회 법안개정등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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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풍족한 해양자원을 둘러싼 다툼이 거세지고 있다. EEZ는 영해로부터 200해리(370.4㎞)까지다. 지난 1994년 국제법으로 EEZ 내 모든 자원에 대한 국가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키로 하면서 우리 국적 어선만 조업이 허용된다.

독도로 대표되는 영해권 분쟁,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단속 등 충돌이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엔 EEZ 내 바닷모래 채취를 두고 어업인들과 골재업계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2008년 국토교통부는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도 동남쪽 70㎞ 일대 EEZ에서 2010년까지 국책사업용으로 바닷모래 3천520만㎥ 채취를 허가했다. 이후 2015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골재 채취단지 내 바닷모래 채취기한과 채취량을 늘리고 당초 국책사업용에서 민간용으로도 할 수 있게끔 지정변경 승인을 했다.

하지만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어업인들은 '더이상 못살겠다'며 해상과 육상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집단시위를 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어류 산란장인 바닷속 모래밭이 완전히 사라진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정부는 바다 생태계 파괴 대책은 뒷전이라는 것이다.

# 수산업계의 해수부 vs 건설업계의 국토부, 끝없는 평행선

해양수산부는 지난 20일 EEZ 바닷모래 채취를 국책용으로 한정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정부가 골재난을 해소하고자 올해 3월부터 내년 2월 말까지 바닷모래를 추가로 채취할 수 있게 허가하면서 어민들이 강하게 반발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모래 채취 허가가 확정된 곳이 있어 실질적으로 남해 EEZ는 내년 3월부터, 서해 EEZ는 2019년 1월1일부터 적용된다.

어민들의 반발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고 있다. '남해EEZ바닷모래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전국 수협은 지난 15일 어선 4만척과 어민 10여만명이 참가한 총궐기대회를 전국 연안과 항·포구 등지에서 동시에 전개했다. 또 허가연장 전반에 대한 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할 방침이며 바닷모래 채취 전면 중단을 대선 공약에 반영해줄 것을 촉구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당초 국책사업용이었던 바닷모래를 민수용으로 공급하기로 결정한 직후 국토부 출신 인사가 골재협회 상임부회장으로 취임해 그 배경에 대한 의혹을 떨칠 수 없다"며 "향후 10년 어업인의 생존권을 지켜낼 기로에 서 있다. 바닷모래 채취 중단과 수산 발전 정책이 담긴 '대선 후보에게 바라는 전국 수협조합장 선언'을 각 정당에 전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바닷모래 채취허가권을 가진 국토교통부는 해수부 발표에 난감한 입장이다. 육상 골재 등으로 바닷모래를 대체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아 골재난 심화에 따른 건설업계의 진통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650만㎥의 남해 EEZ 모래 채취 신규 물량이 이달 초 고시됐지만 해수부가 까다로운 채취 조건을 내세워 수자원공사는 아직 채취업자 모집 공고도 내지 못하고 있는 등 골재난이 현실화되고 있다.

건설업계는 '골재파동'이 재현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 바닷모래 부족으로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공사물량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16일부터 EEZ 모래채취 중단으로 모래 가격은 기존 1만3천~1만8천원/㎥에서 2만5천~3만2천원/㎥로 거의 두 배까지 폭등했다.

모래가격 상승은 곧 건설업계 및 레미콘업계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 모래 가격 상승으로 인한 민간공사의 공사비 증가액을 추정해 보면 약 1.1% 상승한 1천900억원 이상이 늘어날 것으로 협회는 예상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증가하는 비용은 결국 '국민적 부담 가중'으로 귀결된다. 공공부문 공사의 경우 국민 세금 투입이 늘어나고, 민간부문의 경우 주택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골재원을 안정화 해 지역경제가 위축되지 않도록 할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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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전 없는 대립, 정부 해결 위해 총력

남해 EEZ 내 모래 채취가 중단되자 남해 EEZ 모래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레미콘공장 130여곳 중 54%에 달하는 70여곳이 가격 급등과 공급부족으로 가동을 멈춘 상태다.

자연스럽게 건설현장은 올스톱 된 상태다. 대신 서해 EEZ (전북 군산)에서 채취된 모랫값은 두 배 넘게 치솟고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물량이 언제 동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건설업계는 과거 모래 채취를 허가한 지자체들에 눈을 돌려보고 있지만, 어민들의 반발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이조차도 여의치 않다. 경기도 내 모래 채취가 이뤄진 적이 있는 곳은 안산시가 유일하다. 안산시는 풍도 인근 해역에서 2013년 3월부터 12월말까지 520만㎥ 바닷모래 채취를 허가한 바 있다.

당시 안산시는 환경파괴와 어민들의 생업터전이 상실된다는 정부와 경기도의 반대의견에도 모래 채취를 허가해줬다가 검찰의 수사를 받는 등 홍역을 앓았다. 더구나 최근 옹진수협의 반발도 있어 채취 허가는 절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국무조정실이 직접 건설업계, 수산업계, 국토부, 해수부, 한국수자원공사 등 관계 기관들이 한 테이블에서 갈등 해소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직접 조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협의체를 구성하고 서로의 입장을 조율함과 동시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골재협회,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등에서 발표한 연구결과 및 용역보고서를 취합해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기 일방적인 주장만 반복적으로 내비치면서 시간만 지체하고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법령 제·개정이 필요한 만큼 국회의 움직임도 요구되는 상황이다. EEZ 내 모래채취가 국책사업용에서 민간용으로 확대된 데서 어민의 불만이 시작된 만큼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바닷모래 골재 채취 단지 지정과 허가권'을 국토부에서 해수부로 옮겨야 한다는 방안 등은 법령 개정을 전제하고 있다.

또 국회 입법조사처도 지난 27일 "장기적으로 바다골재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 골재의 사용을 적극 장려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국토부와 해수부 등 정부 기관과 건설업계, 수산업계 등 이해관계자들이 원활하게 협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며 "지속적인 협의를 거쳐 합리적인 대안 도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시언기자 cool@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