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줄 한명만 있어도 외롭지 않아
사랑한다면 배려 안할 수 없어
일방적 희생 결코 오래가지 못해
결혼생활 행복하게 유지하려면
서로 믿고 배려하려고 노력해야
"행복한 가정은 다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다 저마다 이유가 있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카레니나에 나오는 첫 문장처럼 각 가정마다 불화의 이유가 다르고, 같은 일에 대한 고통의 강도나 반응도 다 다르다. 좋을 때는 하루라도 못 보면 죽을 것 같던 사람들이 싸울 때는 하루라도 같이 있으면 죽을 것 같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선글라스를 낀 채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중년부인은 과거에는 참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눈 밑의 멍을 보여준다. 반백의 칠순이 넘으신 어르신은 45년간 결혼생활을 하면서 배우지 못했다고 무시당하거나 폭행도 참고 지내왔는데 이제 좀 살만하자 은퇴한 남편이 50대 여자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였다며 황혼이혼을 하겠다고 하신다. 여태 괄시당하고 사셨을 때는 이혼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는데 왜 새삼스럽게 지금이냐고 조심스럽게 여쭙자 "영감이 바람피우는 꼴은 절대 못 봐"라며.
담담한 얼굴로 오신 어떤 부인은 남편의 외도가 여러 번 있었는데 이번 여자는 돈을 달라고 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물어보신다. 옆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남편의 표정이 애처롭다. 이 분에게는 남편의 외도는 별거 아니고, 돈이 가장 중요하리라.
변호사 초년생일 때는 남편의 외도나 시댁 욕을 하느라 몇 시간씩 상담을 하신 분이 소장을 접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찾아오면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부 사이의 오묘함을 알기에 당황하지 않고 충분한 재발방지책을 안내해드리고 다시는 같은 일로 뵙지 않기를 빌어드린다. 소송으로 수개월간 치열하게 다투었는데 소송과정에서 진정어린 사과를 접한 후 화해를 하는 드라마틱한 경우도 있다. 결혼생활 24년차라서 그런지 몰라도 상습폭력이 아닌 한, 돈 문제든 외도든 일단 이혼을 결심한 분이라도 이혼사유가 부족하다거나, 아직은 자립에 대한 대비책이 없거나 여전히 배우자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엿보일 때는 이혼보다는 부부 상담을 적극 권유해왔다. 오랜 시간 살아왔는데 하루 이틀 소장 먼저 낸다고 달라지는 것 아니니 천천히 생각해보고 신중히 결정하라고 권한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다보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이혼인지, 아니면 이혼보다는 재산을 지키고 싶어하는 지, 상대방의 진정한 사과만 있으면 되는지 등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문제해결의 방법은 다양하다. 스스로의 자존감을 키우거나 적절한 제안을 배우자에게 함으로써 관계가 개선되기도 한다. 알려준 대로 했더니 갈등이 해결되었다며 좋아하는 의뢰인의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혼전문변호사보다 부부관계회복 상담변호사라는 말이 더 좋다.
결혼은 남녀 간에 일대일로 만나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원하지 않아도 그 상대방의 가족, 집안뿐 아니라 역사, 세계가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비슷하든 전혀 다르든 서로가 만나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결혼. 결혼은 과연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고루할지 모르지만 답을 하자면 여전히 '사랑'이다. 흔히 생각하는 에로스적 사랑이 아닌 신뢰와 배려야말로 부부간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배우자를 신뢰하면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지 않게 되고, 누군가 이 세상에 한명이라도 믿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다. 또 사랑하면 그 사람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왕으로 대접을 받으려면 아내를 왕비로 대접하고, 왕비가 되고 싶으면 남편을 왕으로 대접하면 된다. 사랑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방의 희생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유지하려면 상대방을 믿고, 배려하기 위해 쌍방이 모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미애 변호사